도쿄의 야마타네 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지하 전시실에서는 우에무라 쇼엔 탄생 15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발소리가 맑게 울릴 만큼 고요한 전시실에서, 한 노부부가 비단의 결을 따라가듯 찬찬히 그림을 보고 있었다.
‘봄의 차림’ 앞에 섰다. 차가운 비단이 이마를 스치는 듯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성스레 그려진 여인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시선을 가리지 않으려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들의 몸짓마저 그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쇼엔의 여인들은 수채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맑고 청초했다. 그는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본화 속 여성상을 기품 있고 강인하게 그려냈다. 부채를 든 손끝이나 칸자시를 매만지는 동작, 모기장을 치다 반딧불이를 발견하는 표정까지. 절제와 긴장이 느껴져, 그 그림 앞에서 잠시 숨이 멎었다. 동시에 나는 간송미술관에서 보았던 신윤복의 ‘미인도’가 떠올랐다. 신윤복의 여인이 생활의 온기를 품고 있다면 쇼엔의 여인은 고상한 품위를 지녔다. 전자는 삶의 안쪽에, 후자는 바깥에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상상했다. 족자 밖으로 종이 인형처럼 걸어 나와 대화를 나누는 여인들을.
“그 벚꽃 장식, 참 곱습니다.” “킨자시예요. 비녀와 비슷하지요.” “머리는 직접 땋으신 건가요?” “네, 가체를 얹은 거랍니다.”
작품 속의 여성들은 스스로 ‘미인’의 자리를 선택했을까. 그들의 침묵은 자유였을까, 혹은 강요된 미덕이었을까. 질문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졌다. 오늘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단하면 그 시대의 숨결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그들이 어떤 시선에 놓였는가?”에서 “나는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가”로. 도록을 옆구리에 끼고 에비스역으로 향하던 여름 저녁, 가을 초입에 다시 그날을 떠올린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