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문제는 존중이야

입력 2025-10-10 00:32 수정 2025-10-10 00:32

사춘기 자녀에겐 충고 대신
존중·독려·지원이 필요해
단호하지만 다정한 태도로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특강을 갔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절반의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교실을 맘대로 돌아다녔다. “시험이 끝나서 그래요. 사춘기 아이들이 다 그렇죠”라며 교사가 머쓱해했지만, 격렬한 사춘기의 몸짓을 눈앞에서 대거 목격하니 다소 놀랐다. 이후 중고등학교에 강의를 갈 때면 마음을 다잡는다. 당연한 풍경에 섣불리 놀라지 말자며.

긴 추석 연휴의 첫날은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다. 고3 학부모부터 초등 저학년 아이를 키우는 친구까지, 역시 수다의 정점은 ‘사춘기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 게 현명한가’에 찍혀 있었다. 모두가 겪는 시기이니 부모로서 올바른 태도는 ‘믿고 기다리기’라는 원론적 이야기부터, 아이가 좋아하는 K팝 아이돌 콘서트의 티케팅을 성공하면 부모로서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조언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잔소리를 참는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2 학부모 친구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혔다. 사랑해서 하는 잔소리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해야 마땅한 잔소리. 소설가 은희경은 ‘잔소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듣는 사람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옳은 말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아이와 종종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를 본다. 아직 공부에 욕심이 크게 없는 편인데 이 프로그램만큼은 챙겨 본다.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나중에 공부 열심히 하려고 미리 봐두는 거야?” “아니, 선생님들이 화내는 게 너무 웃겨.” 공부 팁이라도 몇 개 주워듣나 기대했더니, ‘예능’을 결코 ‘교양’으로 보지 않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런데 엄마, 나는 정승제 선생님이 좋더라. 학생 이야기를 들어주잖아. 일단.” 초등 아이라고 왜 모르겠나, 애정에서 싹튼 영양가 높은 조언과 참지 못해서 쏟아내는 잔소리의 차이를.

올해 초 “청소년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는 추천사에 끌려 ‘어른의 영향력’을 읽었다. 발달심리학자인 저자 데이비드 예거는 청소년의 사회 발달과 동기부여를 연구한다. 그는 “청소년의 뇌는 합리적 사고가 가능할 만큼 충분히 발달해 있다”며 “사춘기가 되면 뇌의 보상 추구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때 청소년의 뇌는 존중의 경험을 갈망하고 굴욕이나 무시를 특히나 혐오한다”고 밝힌다. “10세부터 25세 사이 젊은 세대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지위와 존중’이고, “어른이 보기에 신경생물학적 무능으로 보이는 모습은, 대개 청소년이 지위와 존중을 건전하게 추구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어른들이 ‘멘토 마인드셋’으로 청소년의 욕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만 높고 지원을 하지 않는 ‘강요자 마인드셋’이 아닌, ‘기대 없이 지원만 하는 ‘보호자 마인드 셋’이 아닌 높은 기준과 높은 지원을 동시에 적용하라고 지적한다. 책에는 많은 예시가 등장하는데 저자의 증조할머니 ‘레오나’가 아들의 자퇴 선언을 마주한 뒤 보인 반응이 퍽 인상적이었다. 레오나는 낙제 점수를 받은 아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변명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너는 잠재력이 있으니 견뎌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했다.

존중, 독려, 지원. 레오나는 아들이 필요로 하는 걸 정확히 알았다. 저자는 레오나를 “단호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다정하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로 표현했는데, 이상적으로 여길 만한 부모의 상이자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하물며 어린아이도 자신을 환대하는 어른인지 아닌지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사춘기를 극심이 앓고 있는 청소년이라고 왜 모르겠나. 내 고민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는 어른과 그저 목도만 하고 있는 상대를. 문제는 존중이다. 해답도 존중이다. 존중하면 들어야 하고, 존중하니까 도와야 한다.

엄지혜 작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