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제주의 첫 번째 동네 책방

입력 2025-10-11 00:35

제주도 종달리에 처음 가본 건 2003년이었다. 방파제에 앉아 종달항을 스케치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구나 싶었다. 그 여행에서 처음 비자림을 걸었고, 중산간의 너른 초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여기 살아도 좋겠구나 싶었다. 물론 소심한 필자는 끝내 삶의 터전을 바꾸지 못했다. 2010년 이후 제주 이주 열풍이 일어나면서, 종달리도 조금은 달라졌다.

종달리 ‘소심한 책방’은 2014년 제주에 생긴 첫 번째 동네책방이다. 공동대표인 현미라와 장인애 씨는 책을 좋아하는 직장인이었다. 2012년 현미라 대표가 가족과 함께 종달리에 내려가 ‘수상한 소금밭’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며 씨앗이 뿌려졌다. 당시 현 대표는 양육자이자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로 정신없이 살면서, 혼자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그때 불현듯 책방을 떠올렸다. 게스트하우스 가까이에 일명 세모집을 얻어 ‘소심한 책방’을 열았다. 책방 옆 퐁낭 아래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혀를 찼다. “여관 해서 번 돈 다 말아먹고 서울 가게 생겼구나.”

책방이 자리를 잡자 종달리에 카페와 식당이 생겼고 제주 여행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소심한 책방’이 종달리의 앵커리지 스토어 역할을 한 거였다. 2021년 책방은 이전했다. 시작은 짐짓 무모했으나 책방 이전을 앞두고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또 세를 얻자니 불안정하기는 매한가지. 이제 제주에 책방도 많은데 그만둘까도 싶었다. 결국 현 대표는 더 많은 매출을 안겨주던 ‘수상한 소금밭’ 게스트하우스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책방으로 바꾸었다.

이제 독자에게 책을 잘 소개하기 위해 좀 더 고민한다. 회사에 다닐 때도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할 때가 있었다. 책방도 비슷하지 않겠나. 그래도 책방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다름 아닌 책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이전한 책방은 넓고 자유롭고 아름답다. 그림책부터 성인 도서까지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스태프가 고른 책과 제주를 다룬 책도 볼거리고, 특색 있는 굿즈도 만날 수 있다. 이 정도면 소심이 아니라 “대범한 책방”이다.

그 중에서 공동대표 두 사람이 합의해 고르는 ‘숨겨둔 책 ’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두 사람의 취향이 사뭇 달라 함께 추천할 책을 고르는 일이 정말 힘들어서, 1년에 서너 권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까 들어가며 찜해뒀던 ‘숨겨둔 책’이 그새 팔리고 없었다. 블라인드 북이라 무슨 책인지 모르니 더 아쉬웠다.

알게 되면 좋아지고, 정이 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법.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 하는데 책방이 그지없이 애틋했다. 이럴 때마다 중얼거린다. ‘다시 와야지. 그때는 맥주를 마시며 오후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노을이 지는 걸 봐야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책방이 있다면 힘을 내 가보고 싶어진다. 마치 거기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