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3일 “이산가족들이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하다못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남북 모든 정치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인도적 영역에서부터의 교류 확대’ 의사를 북측에 선제적으로 타진해 장기간 경색 국면인 남북 관계 해소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북한 개성까지 직선으로 18㎞ 떨어진 인천시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찾아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돼 상태가 매우 안 좋다. 너무 적대적으로 변했다. 가장 큰 책임은 정치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측에도 이런 안타까운 점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이 대통령은 “남북 간 휴전선이 그어진 지 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아까 강 위에서 보니 기러기들이 쭉 줄을 지어 날아가는 게 보였다”며 “동물들은 자유롭게 강을 아래위로 날아다니는데 사람들만 자꾸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넘어가면 가해를 할 것처럼 위협하며 총구를 겨누고 수십 년 세월을 보내고 있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빨리 남북 간 적대성이 완화되고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혈육 간에 헤어져 서로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이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평화전망대에는 8명의 실향민도 자리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고향 소식 다 전해 듣고 헤어진 가족 만나 따뜻하게 함께 대화 나눌 수 있는 그 날을 최대한 앞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임진강을 바라보면서 실향민 사연을 들은 뒤 “조금만 더 견뎌보시라.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취임 이후 대북 확성기 철거·방송 중단·전단 금지 등의 잇따른 유화책을 내놓았는데도 좀처럼 남북 관계가 풀리지 않는 국면에서 나왔다. 정치·군사적 긴장 관계 해소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명분이 큰 ‘이산가족 카드’를 꺼내 북한과 교류 실마리를 찾으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절차적 부담이 큰 이산가족 ‘상봉’보다 먼저 ‘생사 확인 및 편지 왕래’ 방안을 제시한 것도 가능성 높은 일부터 차근차근 실천하자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다 이달 말에 있을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대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흐름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 더 관심을 끈다.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언급처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선제적으로 자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이 대통령 이날 인천 아동 양육시설인 계명원을 방문해 학대 피해 아동 등의 생활 환경을 둘러봤다. 이어 서울 약수지구대로 이동해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들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4일부터 별다른 일정 없이 휴식하며 정국 구상에 몰두할 계획이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