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프랑스 파리 기후회의 때 나온 만찬은 뜻밖의 메뉴였다. 육류 대신 채식 위주의 ‘지속가능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기후위기를 논의하는 마당에 음식부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2009년 싱가포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땐 아시아와 서양을 연결하는 싱가포르의 상징성을 강조하려고 ‘퓨전 요리’를 만찬 콘셉트로 삼았다. 동양 요리 락사(코코넛 국수 요리)와 서양의 스테이크 등이 어우러졌다.
국제회의에선 홍보 차원에서 자국산 식재료나 메뉴도 자주 등장한다. 2000년 오키나와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땐 일본 초밥이 나왔고, 2004년 칠레 APEC에선 칠레산 와인과 연어 요리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와인 하면 프랑스산이 대세였는데 이후 칠레산이 전 세계로 많이 수출됐다고 한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 땐 러시아산 캐비아와 현지에서 잡힌 가리비 요리가 정상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2015년 필리핀 APEC 땐 바나나와 망고가 디저트였다.
음식이 정상들에게 다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2001년 상하이 APEC 때는 서양 정상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중국산 향신료 때문에 음식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2009년 싱가포르 APEC 땐 디저트로 나온 두리안 향에 정상들이 많이 놀랐고, 2007년 호주 APEC에선 캥거루 고기가 나와 호불호가 갈렸다.
오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때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가 롯데호텔 셰프들과 협업해 만찬을 준비하게 됐다. 그가 외교부에 밝힌 만찬 콘셉트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한국 음식이 어떻게 세계적인 것이 됐는지, 또 어떻게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주는 힘을 갖게 됐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2005년 부산 APEC 땐 바다의 도시임을 알리기 위한 해산물 잡채와 한국을 상징하는 인삼 요리가 눈길을 끌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메뉴가 등장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푸드 한류’를 더욱 가속화시킬 멋진 메뉴를 기대한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