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배임죄 완전 폐지를 공식화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배임죄 조항을 삭제하거나 특정 법률의 제도적 정비만을 다룬다. 그러나 형법·상법상 배임죄와 이를 준용하는 여타 법안 판례만 3000개가 넘고 유형도 십수가지에 달한다. 이를 유형화하고, 각 법제에 맞게 대체입법안을 만드는 데에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2일 국민일보 통화에서 “대체입법안이 있어야 회의라도 하는데 안도 없으니 회의를 할 수도 없다”며 “원내지도부를 중심으로 배임죄를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메시지는 내고 있지만 실무상으로는 아무 진척이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최근 실무자들에게 “대체법안을 만들 수 있느냐”며 실현 가능성을 수차례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죄를 폐지했을 경우 발생하는 법·제도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다양한 대체 법안과 제도가 필요하다. 배임죄는 형법, 상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다양한 법률에 명시되거나 녹아 있어 이를 일률적으로 폐지하기 위해선 배임죄 판례부터 유형화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배임죄 관련 3300여개 판례를 유형별로 정리하면 십수가지에 달한다”며 “해당 유형별 대체입법을 형법으로 할지, 상법이나 민법에 녹일지 유형마다 대체입법의 방향성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입법안이 있는데 발표를 안 한 게 아니라 진짜 대체입법안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현재 유형화 작업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배임죄가 없어진 빈 공간엔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제) 같은 민법상 제도가 대체재로 들어와야 한다. 배임죄가 폐지되면 기업·단체에 손해를 끼쳤다는 걸 입증하려 해도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로 증거를 확보할 형법상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생긴다. 이를 해결하려면 상호 간의 증거를 법원에서 개시(開示)하는 디스커버리 제도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게다가 경영계 일부에선 배임죄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영자뿐 아니라 중간관리자 직급에서도 배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계 요구를 선별해 반영하면서도 제도적 허점 없는 대체입법안을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입법안을 만들어야 할 법무부의 인원도 부족해 중과부적 상태다. 현재 배임죄 폐지 관련 소관부서인 법무부 상사법무과는 15명 내외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부서는 배임죄 폐지에 따른 대체입법안 마련뿐 아니라 경제형벌 합리화 전체 과제 해결에도 참여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사 몇 명 붙는다고 (대체입법안 마련이)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한웅희 김혜원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