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국문과 최경봉 교수는 세종이 창제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한글에 대한 평가를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한다. “한글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말소리를 정밀하게 표기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다.” 한글의 제자 원리와 사용법을 해설한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정인지가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같으나 오늘의 한국인은 100년 전 한국어는 듣고 이해할 수 있어도, 한글로 쓰인 글은 읽지만 이해할 수 없다. 한글이 수많은 변모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글 연대기’는 한글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로 한글의 변천사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훈민’의 목적으로 창제된 한글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대목이다. 세종은 한글 창제 후 “내가 만일 언문(한글)으로 ‘삼강행실도’를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라고 말하며 창제의 의미를 강조했다.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꿈꾸던 조선 사회에서 한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한글은 창제 후 6년 만에 고위 관료의 비리를 고발하는 한글 벽보가 등장할 정도로 백성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18세기에는 한글 소설까지 등장했다. 널리 퍼진 한글을 기반으로 반체제적 사상인 동학과 서학(천주교)의 사상도 빠르게 전파될 것이라는 점은 세종도 몰랐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지식과 사상이라도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한글이었기에, 한글이 담는 지식과 사사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글의 진정한 힘을 목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1894년 고종은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한글)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혼용한다”는 칙령을 내린다. ‘한글과 한문의 위상을 뒤바꾼 역사적 선언이자, 더 이상 중화 문명권에 머물지 않겠다는 문화적 독립선언’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일제에 의해 주권을 뺏긴 이후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외래어 표기법과 한글 맞춤법의 제정, 국어사전 편찬의 연대기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줄 증거인 한글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어문민족주의적 신념’ 차원에서 풀어낸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한 믿음, 한글의 쓰임이 확대될 것이라는 믿음은 암흑의 시절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자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났을 때 한글의 과학성에 대한 신념은 잠시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1914년 이원익이 개발한 한글 타자기를 1927년 송기주가 개량하고, 1948년 공병우가 실용화한 과정은 한글의 과학성을 입증하기 위한 분투의 역사다. 마침내 휴대전화라는 좁은 공간에서도 문자를 구현하는 ‘천지인’ 자판의 완성은 한글의 제자 원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글날 제정의 연대기’를 통해 한글을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한글의 미래를 얘기한다. 과거와 21세기 현재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정치, 경제, 문화적인 성과 위에서 한글의 의미를 생각할 때인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적 자부심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으로, 문화적 독립에서 문화적 베풂으로, 민족의식의 통일에서 민주의식의 다양성으로 확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세·줄·평 ★ ★ ★
·한글에 대한 무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자료 사진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이해를 돕는다
·정성스러운 책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