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국 경제 총체적 난국

입력 2025-10-03 00:38

요즘처럼 상가에 공실이 많았던 때가 있었나. 거리를 걷다보면 ‘임대 문의’라고 적힌 현수막을 한 집 건너 하나꼴로 보는 듯하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빚을 제때 갚지 못한 개인사업자가 지난 7월 기준 16만1198명이다. 2020년 12월(5만1045명)보다 3배 넘게 늘었다. 서울 상수동의 한 초밥집 사장은 “8년 전 가게를 연 이후 요즘이 최악”이라고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된 뒤 소상공인 매출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보면 하나도 공감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매판매(-2.4%)는 18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말도 마세요. 손님 없는 건 물론이고 예전엔 가격대가 있는 메뉴도 많이 팔렸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대안이 없어서 버티고는 있는데 이제 한계에 달한 것 같아요. 당최 사람들이 돈을 안 쓴다니까요.”

이렇게 소비가 쪼그라들었던 적이 있던가.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민의 평균 소비성향은 70.3%였다. 10년 전(73.6%)보다 3.3% 포인트 감소했다. 세금이나 이자 비용을 제외하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됐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가처분소득은 늘었는가. 그렇지 않다. 세월이 흐를수록 물가가 오른다는 걸 감안하면 가처분소득은 증가해야 마땅한데 20, 30대는 2014년(월 348만원)보다 지난해(월 346만원) 오히려 줄었다.

무엇이 이들의 주머니를 닫게 했을까. 경제 전문가들은 30, 40대의 경우 부동산 투자가 소비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모은 돈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나의 이야기로 가져가려면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40대의 1인당 평균 가계대출 잔액은 1억2100만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5년 전(2020년 2분기)보다 21.5% 증가했다. 대출이자를 갚으려면 허리띠를 졸라야 했다. 부동산에 묶인 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는 이재명정부의 방향성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게 정부 뜻대로 되는 것인가. 주가가 우상향하려면 기업 실적이 따라줘야 한다.

허나 경영 환경이 이토록 위태로웠던 때가 있었던가.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주4.5일제 등 이미 통과됐거나 논의 중인 정책은 대부분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것들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난적을 마주했던 적이 있었나. 트럼프는 3500억 달러를 선불로 입금하지 않으면 자동차, 의약품, 반도체 등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매기겠다며 협박하고 있다. 한국에는 중국의 희토류처럼 미국이 움찔할 만한 대항 카드도 없다. 한국 기업은 위기에 처해 있지만 트럼프가 상대국 사정 따위 봐줄 리 없다.

자영업, 소비, 가처분소득, 가계대출, 부동산, 주식, 기업 경영 등 한국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따로 놀지 않는다. 또 하나의 통계 자료를 보자. 통계청의 ‘2024년 사망 원인’이다. 지난해 40대 사망자 1만836명 중 가장 많은 2817명(26%)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이 40대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한 건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40년 넘게 버텨온 이들을 결국 사지로 몰아낸 건 무엇이었을까. 사회초년생 때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경쟁 압력, 생계 부담, 짓누르는 책임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이제 우린 무엇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지금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