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밥상 정치 토론장 아닌 가정 예배의 자리로

입력 2025-10-03 03:01
게티이미지뱅크

김시은(가명·22)씨는 추석을 앞두고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것도 잠시, 밥상머리가 이내 정치 토론장으로 바뀌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정치 현안을 두고 편이 갈리고 고성까지 오가는 등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씨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명절 때마다 꼭 누군가 정치 얘기를 꺼내면서 싸움이 시작된다”고 토로했다.

여러 특검에 적지 않은 국정 현안들, 여야 갈등까지 더해진 이번 추석에 집집마다 이런 장면이 재현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통계청이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를 인용해 지난 3월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77.5%)의 차이가 우리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나타났다. 또 2023년 케이스탯리서치 조사에서는 국민 40.7%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응답했다. 정치 갈등이 일상으로 번지면서 명절 밥상도 긴장으로 얼어붙고 있는 셈이다.

주상락 미국 바키대학원대 선교적목회학 교수는 “정치적 성향을 삶과 개인의 정체성에 투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족이라도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며 “논쟁에 빠졌던 가족은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고, 심할 경우 적대적 감정까지 품게 돼 가족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갈등이 고조된 때일수록 정치가 아닌 사랑과 감사 인사가 오가는 명절 밥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9)고 말한다. 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 4:26)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골 3:13)고 권한다. 결국 신앙인의 명절은 논쟁보다 화해와 돌봄, 감사와 나눔의 시간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신앙 가정은 명절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까.

주 교수는 “될 수 있으면 이번 명절에는 민감한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가족의 삶을 경청하며 신앙적 이야기와 믿음의 유산을 나누라”면서 “서로 존중하는 언어 습관이 갈등을 줄이고 화목을 이루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명절 풍경을 바꾼 가정도 있다. 인천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김정민(가명·51) 권사 가정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마다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친척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늘 식탁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전환점은 원로장로였던 시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다. 시아버지는 “함께 예배하라”는 당부를 남겼다고 한다.

이후 명절에 모인 가족들은 짧은 예배에 이어 평소 감사했던 일들을 나눈 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김 권사는 “정치 문제로 가족 간에 다투던 시간이 이제는 감사의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반색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정치는 상대적’이라는 인식을 늘 가져야 하고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 아래 가족이 먼저 기도하고 예배하는 명절 문화를 정착하는 게 필요하다”며 “건강한 대화는 가능하지만 상처 주는 말은 철저히 멀리하라”고 했다.

교회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주 교수는 “탄핵 정국을 겪으며 교회 안에서조차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며 “교회에서는 정치적 수사를 줄이고 ‘1분 신앙 유산 나누기’ 같은 캠페인을 시작해 각 가정으로 확산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고백하는 은혜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의용 감사학교 교장은 신앙인들이 솔선수범하라고 요청했다.

이 교장은 “추석은 ‘감사절’로 명절 밥상에서 정치나 교회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가족끼리 칭찬하고 감사와 격려의 말을 주고받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자·불신자가 섞여 있는 가족 모임에서 정치적 연설이나 전도보다 따뜻한 태도가 더 큰 여운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과 만나는 짧은 시간 친절을 베풀고 먼저 봉사하며 헌신하려고 노력하라”면서 “아이들을 평가하기에 앞서 칭찬하고 늘 솔선수범하는 태도가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