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있는 창작진에 초연 기회… 대구가 만든 작품, 서울서 본다”

입력 2025-10-03 00:04
김희철 대구문예회관 관장이 최근 서울 정동극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관장은 서울 충무아트센터 본부장, 국립정동극장 대표 시절 다양한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2022년 12월 부임한 대구문예회관에서도 최근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권현구 기자

한국 뮤지컬 시장은 21세기 들어 빠르게 성장했지만, 영국과 미국 등에서 만들어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도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뮤지컬계 중요 과제로 창작 대극장 뮤지컬 제작 활성화가 꼽히고 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문화예술회관(이하 대구문예회관)이 국내 뮤지컬계 주요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창작 대극장 뮤지컬을 2년 연속 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올해 제작된 ‘설공찬’은 현재 서울(9월 9일~10월 26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장기 공연되고 있다. 뮤지컬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서울에 편중된 데다 지역 문예회관의 어려운 예산 사정을 고려할 때 대구문예회관의 도전은 놀랍다. 아울러 대구문예회관은 근래 지역 문예회관 가운데 가장 화려한 공연 라인업을 선보이며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처럼 괄목상대할 변화의 중심에는 2022년 12월 부임한 김희철 관장이 있다. 김 관장은 서울 충무아트센터 본부장,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술본부장, 국립정동극장 대표 등을 역임하며 공연 제작·마케팅·공연장 운영에서 다양한 성과를 낸 인물이다. 김 관장이 충무아트센터 본부장 시절 제작한 ‘프랑켄슈타인’은 대형 창작뮤지컬로는 처음 해외(일본)에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으며, 국립정동극장 대표 시절엔 민간에서 발표된 작품을 재공연해 레퍼토리로 만드는 ‘2차 제작극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김 관장을 최근 만나 대구문예회관의 변화와 함께 지역 문예회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지역 문예회관은 국내 공연계의 모세혈관 역할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침체돼 있다. 최근 대구문예회관의 변화 비결은 무엇인가.

“대구문예회관이 올해 35주년을 맞았다.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전문화된 장르의 공연장이 문을 열고 수성아트피아와 같은 여러 구 단위 공연장이 자리를 잡는 등 다양한 변화 속에서 명확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공공문화예술기관의 주요 운영 목적인 시민들의 문화 욕구 충족이라는 부분에서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대구문예회관에 왔을 때 먼저 공연장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앞서 서울 중구라는 기초 지자체의 공연장인 충무아트센터를 뮤지컬 중심으로 설정한 것이나 국립정동극장을 2차 제작극장으로 전환한 것처럼 대구문예회관의 상황을 자세히 검토한 뒤 방향성을 정해야 했다. 6개 시립예술단을 활성화하고 우수한 외부 공연을 많이 확보해 시민들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제작·홍보·마케팅 등 여러 분야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했다.”

-대구문예회관의 최근 라인업을 보면 국립정동극장의 ‘적벽’, 국립발레단 ‘킬리언 프로젝트’,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등 우수 공연이 다수 포함됐다. 대부분의 문예회관이 높은 인건비 비중 탓에 공연 예산은 전체의 5~10% 수준인 곳이 많은데, 대구문예회관은 어떻게 예산을 확보했나.

“대구문예회관의 연간 기획공연 예산이 6억원이다. 좋은 공연을 다양하게 확보하기엔 매우 부족한 예산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 예술단체 및 주요 콘텐츠 제작사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장르별 유통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를 토대로 국립 단체와 주요 기획사의 공동제작 파트너로서 입지를 다진 덕분에 웰메이드 작품들을 많이 부를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어려운 대극장 창작 뮤지컬을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제작했다. 대구문예회관의 정체성을 제작극장에 둔 것인가.

“대구문예회관은 예산과 인력 등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배급할 수 있는 극장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제작극장을 표방하려면 재능 있는 창작진에게 초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이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을 개최하는 등 대구에서 특화된 뮤지컬을 실험 및 제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구에 초청된 창작진은 대구문예회관의 자원을 활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다. 이때 지역의 젊은 창작자들을 조연출과 조안무 등 스태프로 기용해 성장의 기회도 제공했다. 뮤지컬 창작진, 대구뮤지컬페스티벌, 대구시립극단과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 지난해 ‘미싱링크’와 올해 ‘설공찬’이다. ‘미싱링크’는 배시현 극작, 이종석 연출, 이성준 작곡 등의 창작진이 왔으며, ‘설공찬’은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곡 콤비가 힘을 보탰다. 이들 작품은 대구문예회관의 크레딧을 달고 외부 제작사를 통해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재공연된다. 그 첫 번째가 ‘설공찬’이다.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품들 가운데 한국을 넘어 해외에도 진출하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 문예회관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전속 단체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대구문예회관은 시립국악단,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무용단, 시립극단, 시립소년소녀합창단 등 6개 단체를 관리 및 지원하고 있다.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단원들과 함께 기획·정기 공연을 올리는 한편 시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개 예술단 단원 300명이 참여하는 통합공연을 처음 시도했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가수 장옥조를 소재로 한 ‘울어도 첫사랑’이라는 총체극인데, 예술단 사이의 벽을 허물고 대구문예회관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올해 출연진을 100명 정도로 줄이는 등 완성도를 높여 레퍼토리화 했다.”

-지역 문예회관이라면 지역 예술계와의 협업도 소홀히 해선 안 될 텐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물론이다. 400~500명의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아츠스프링 대구’를 지난해 만들어 2년째 진행했다. 2~4월에 열리는 ‘아츠스프링 대구’는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을 축제로 묶어 집중도를 높였다.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과 협의해 관객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다수 기획했다. 예를 들어 대구연극협회와 함께하는 ‘원로연극제’는 원로 연극인을 조명하며 젊은 배우들과 호흡할 기회를 제공해 큰 호평을 받았다. 또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인 만큼 대구문예회관은 국악 단체의 역량을 개발하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팅 사업 ‘점프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성장한 팀은 대구시립국악단과 협연하는가 하면 해외 공연을 통해 자생할 기회를 얻게 된다. 공연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대구문예회관에 있는 미술관도 대구의 미술인들을 조명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