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46)씨는 사지마비성 뇌성마비로 혼자 힘으로 몸을 뒤집을 수 없는 큰딸 전온유(18)양과 비장애인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김씨의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울지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김씨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하는 일상은 누구나의 상상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구독자 1만6000여명, 많게는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그의 SNS 영상 속에 담긴 감사와 행복 때문이다.
김씨만이 아니다.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장애와 함께하는 일상을 공유하며 연약함 속에서 감사하고 결핍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증언하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은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들을 만났다.
“고난의 순간, 감사와 다정함을 택해요”
김씨는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개인전 ‘빛나는 너에게 보내는 축복’을 열었다. 몸이 불편한 딸 온유를 돌보며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업한 그림과 조형 작품들이 전시됐다. 큰딸 덕에 작가로 활동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그의 말대로였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김씨는 “하루하루가 쉽지만은 않지만 그 안에서 웃음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살아간다”면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SNS에 감사하는 삶에 대한 묵상을 자주 공유한다.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의 고난이 있지만 그 순간에 매몰되지는 않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전한다.
“매 순간 감사와 다정함을 선택하려 애쓴다”는 김씨는 “화가 치밀 때마다 ‘이 마음은 내가 참지 못하게 만드는 유혹이나 마귀 같은 것’이라 여기고 나는 그에 지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화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감정을 이겨낸 작은 승리들이 쌓이며 ‘내 마음을 내가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단단하면서 온화한 그의 태도는 영상에 고스란히 담긴다. 고단한 삶을 행복으로 바꿔내는 힘을 보며 많은 이들이 “위로받았다”고 공감한다. 지난달 초 공개된 영상이 대표적이다. 온유가 잠시 외출한 동생이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김씨는 가만히 곁에 누워 아이를 꼭 안고 달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유는 “너무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잠든다. 60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에는 “오늘 밤 나도 아이를 꼭 안아야겠다” “감동과 힘을 얻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역시 장애아를 둔 부모로서 깊은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다. 온유를 낳고 7년 동안 우울증과 공황 증세를 겪기도 했다.
“장애가 있는 딸 때문에 앞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단정했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행복은 흘러가는 순간순간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알아요. 맑은 하늘과 계절마다 피는 꽃을 볼 때, 아이들과의 저녁 식탁에서 대화 나눌 때, 잠자리에서 온유가 속삭이는 말을 들을 때, 천국 같은 순간을 누리거든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 빛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마음의 바탕은 신앙에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성경 속 욥처럼 고난이 삶을 단단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붙든다면 지금의 고난도 결국은 지나가고 더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모두가 ‘나는 빛나는 사람이고 이 고난을 통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폐 한나씨의 행복한 브이로그
경남 통영교회 김진성(57) 목사와 김소영(57) 사모는 오늘도 카메라를 켠다.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딸 김한나(29)씨의 일상을 담아 유튜브 채널 ‘자폐한나씨의 행복한 브이로그’에 올리기 위해서다. 김 사모는 “우리 가족은 늘 한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함께 평범한 하루를 지켜간다”며 “그렇게 지켜낸 하루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올린다”고 말했다.
한나씨가 라면을 끓이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편집 없이 올린 첫 영상이 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 김 사모가 본격적으로 채널 운영을 하게 된 계기다. 그는 “한나가 똑똑하고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라는 걸 알리고 장애가 곧 가정의 문제나 불행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사모는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구독자 1만7400명이 된 채널엔 식사 외식 장보기 여행 등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상 883편이 올려져 있다. 누적 조회수는 717만회에 달한다. 한나씨 영상을 본 이들은 “장애의 편견이 깨졌다”고 고백한다. “큰 위로가 된다” “행복해 보여 눈물이 난다”는 반응도 많다.
공개된 영상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정도의 에피소드와 일상적 어려움이 주로 담긴다. 그 이면엔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더 있단 얘기다. 가족은 지난 4월 그런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 ‘자폐특공대’를 출간했고 이 책은 지난달 출판문화진흥원의 ‘문학나눔도서’로 선정됐다.
한나씨 가족의 웃음과 감사는 우연이 아니다. 김 사모는 “가족의 이야기가 선한 영향력이 돼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길 바란다”며 “장애아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내 아이와 주어진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찬양하는 시각장애인 그룹 ‘에필로그’
“저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에필로그’ 찬양을 듣고 하나님을 저주하던 지난날을 회개하며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고 고백하게 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 아닐까요.” 구독자 9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에필로그 찬양선교단’에 남겨진 한 고백이다. 2016년 결성된 에필로그는 리더 황현기(44) 의의나무교회 목사와 아내 김하은(39) 사모, 그리고 김 사모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박현준(39)씨로 구성된 1급 시각장애인 3인조 찬양팀이다.
팀명엔 ‘하나님을 만난 뒤 변화된 삶과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황 목사는 “우리의 찬양을 통해 누군가가 신앙의 도전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며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에필로그가 사랑받는 건 단순히 장애인의 찬양이어서만은 아니다. 찬양 가사와 뮤직비디오 영상 속엔 장애를 넘어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며 살아온 삶의 흔적과 고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황 목사와 김 사모는 하나님께 의지해 비장애인 딸 하임(5)양을 낳고 키워왔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갖는 것부터 지지받지 못했다. 황 목사는 앞이 안 보이는 탓에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분만실에도 못 들어갔다. 하임이가 태어난 후로도 장애인 부모의 양육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수시로 부닥친다. 그런 가운데서도 황 목사와 김 사모가 모든 걱정과 고민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모습은 믿음에 삶을 어떻게 견고히 세우는지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이따금 하임양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면 구독자들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지난달 21일엔 김 사모가 둘째 임신 소식을 알리자 많은 이들이 “기도로 함께 하겠다”며 태중의 아이를 축복했다.
“왜 하나님은 좋은 분인데 엄마 아빠 눈을 안 보이게 하셨느냐”는 어린 딸의 질문에 황 목사가 한 대답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이들의 비결을 담고 있었다.
“하임이에게 ‘모든 사람에겐 약한 점이 있고, 하나님이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고난을 겪는 것이니깐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게 믿는 자의 특권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