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에 내려진 보안감점 ‘1.2점’ 조치가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수주전이 치열한 가운데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감점 적용 기간을 내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경쟁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KDDX 사업자 선정은 2023년 12월 기본설계 완료 이후 이미 2년 가까이 지연된 상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논란에 불을 댕긴 건 방사청이다. 방사청은 지난 30일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제재로 HD현대중공업에 취한 보안감점 조치를 1년 더 연장해 내년 12월까지 적용한다고 밝혔다. 감점 자체는 기존 1.8점에서 1.2점으로 낮아졌다.
문제의 유출 사건은 2012~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경쟁사였던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작성한 KDDX 개념설계 자료 등을 불법 취득해 유출한 사실이 방첩사령부 보안 감사에서 적발되며 불거졌다. 2020년 9월 모두 9명이 기소돼 8명은 2022년 11월 판결이 확정됐고, 나머지 1명은 검찰 항소로 2023년 12월 형이 확정됐다.
방사청은 당초 두 판결을 한 사건으로 보고 첫 판결이 나온 2022년 11월을 기준으로 올해 11월까지 3년간 보안감점을 적용하기로 했었다. 그러다 종료 시점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돌연 방침을 바꾼 것이다. KDDX 사업은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기존 구축함 노후화에 대비하고 국산 기술 기반의 차세대 주력 전투함을 확보하는 대규모 국방 프로젝트다.
HD현대중공업은 거세게 반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입장문을 내 “KDDX 사업 추진 방식의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 이런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 강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지금의 상황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 하에 재검토를 요청하는 한편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 기업이 정책 결정 권한을 쥔 정부 기관에 법적 조치까지 거론하며 불만을 표출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HD현대중공업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한화오션과의 극심한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그간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관례에 따라 수의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요구해 왔다. 이런 와중에 보안감점 적용 기간이 연장된 건 사업자 선정 탈락 통보나 다름 없다는 게 HD현대중공업 내부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갈리는 경쟁 입찰에서 1.2점은 뒤집을 수 없는 점수 차”라고 말했다.
방사청은 이달 중 사업자 선정 방식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방사청의 이번 결정으로 경쟁입찰 방식이 유력해졌고 결과적으로 한화오션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사청은 올해에만 3차례 수의계약 안건을 분과위원회에 울렸지만, 민간위원들의 반대와 정치권의 상생협력안 마련 요구 등으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권지혜 허경구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