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추진키로 하면서 김건희 특검의 수사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이 수사 중이거나 이미 재판에 넘긴 사안 상당수에 배임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향후 본격적인 재판 단계에서 ‘면소 판결’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이 수사 중인 주요 사건 피의자 다수는 배임죄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이른바 ‘집사 게이트’의 주요 피의자인 조영탁 IMS모빌리티 대표와 민모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 대표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특검은 두 사람이 2023년 투자받은 184억원 중 32억원을 자회사 부실을 메우는 데 썼다고 의심한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도 계열사를 동원해 자금 사정이 부실했던 IMS에 투자한 혐의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있다.
특히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의 경우 업무상 배임 여부가 사안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김모 국토교통부 서기관을 비롯해 주요 피의자는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을 양평군 양서면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 땅이 있는 강상면으로 변경해 국토부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순방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한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와 ‘대통령실 관저 특혜 수주 의혹’과 관련한 피의자들에게도 배임 혐의가 적용돼 있다. 특검 관계자는 배임죄 폐지 등에 대해 “법이 폐지되면 당연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수사하는 입장에서 입법 상황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여권이 추진하는 대로 형법상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특검이 배임 혐의로 수사한 사안들이 재판 단계에서 줄줄이 면소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면소는 형사재판 중 소송 조건이 없어지면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이미 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건들은 면소 판결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창 수사 중인 특검 입장에서는 배임죄가 폐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혐의 적용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기존 재판이나 수사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혼선을 줄이기 위한 부칙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