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고위급 장성을 소집해 ‘내부와의 전쟁’이 중요하다며 미국 도시 내 군대 투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소령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뚱뚱한 군인은 지겹다”며 장성들에게 강인하고 단정한 용모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800명 넘는 장성을 상대로 1시간13분간 연설했다. 국방부는 지휘관들을 긴급히 소집하면서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지휘 공백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집을 강행하는 것을 두고 크게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긴장감이 군 내부에 감돌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일종의 ‘정신교육’에 그쳤다.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도시 군 투입 정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치중했다. 트럼프는 도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며 “내부의 적을 진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를 최전선으로 여기고 훈련장으로 써야 한다며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처럼 안전하지 않은 도시는 사악한 적”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치안 유지를 위해 군 병력을 투입했거나 검토 중인 도시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곳들이다.
트럼프는 연설 끝에 “이렇게 조용한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무겁게 내려앉은 장성들의 분위기를 꼬집었다. 이어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나가도 된다. 그러면 당신의 계급도 미래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연설에 나선 헤그세스 장관은 군 내부의 워크(Woke) 탓에 전투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워크는 정치적으로 깨어 있음을 뜻하는 용어지만, 미국 사회에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보수 진영은 워크를 진보적 가치를 강요하는 비판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헤그세스는 턱수염과 긴 머리는 이제 허용되지 않는다며 “이발과 면도를 하고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펜타곤(국방부 청사) 복도에서 뚱뚱한 장성들을 보는 것은 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NYT는 헤그세스의 연설 중 많은 부분이 “이라크 주둔 소대장이었을 때나 주방위군 중대장이었을 때 다뤘을 법한 이슈들에 집중됐다”고 전했다. 프린스턴대 학군단(ROTC) 출신인 헤그세스는 이라크에서 12개월간 복무하고 주방위군 소령을 지냈다.
이번 장성 소집 행사에 대해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군대를 정치화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초당적 군대라는 원칙을 짓밟아온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노골적으로 무시를 드러낸 사례”라고 비판했고, CNN은 “군과 정치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