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영 목사의 다함께 선교] 진정한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입력 2025-10-02 00:30

어느 교회에서 예배당 카펫을 교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카펫을 새롭게 하자는 데는 의견이 모였지만 색깔을 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한쪽은 기존처럼 붉은색이 예배 분위기에 어울린다며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은 “푸른 초장이 더 따뜻하고 선교적이지 않겠느냐”며 초록 계열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교회 안에는 ‘보혈파’와 ‘초장파’가 나뉘었고 말씀까지 동원한 신학적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예배당 카펫 색깔을 두고 벌어진 갈등은 본질보다 주변에 집중할 때 교회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일은 단지 예배당의 실내 장식을 두고 벌어진 촌극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과 형식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교회의 중심이며 선교는 그 예배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선교란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예배할 수 있는 예배자로 서게 하는 것, 그것이 선교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통해 선교의 일을 이루십니다. 내가 참된 예배자가 아니면서 다른 이들을 예배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예배를 통과하지 않은 선교는 방향을 잃기 쉽고 능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참된 예배자에게서 참된 선교가 흘러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인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시간, 같은 순서를 따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는 말씀처럼, 예배의 본질은 형식이 아닌 성령과 진리의 교통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보십니다. 예배당의 환경보다 나의 태도와 중심을 살피십니다. 예배 안에 흐르는 말씀의 생명력, 성령의 임재,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향기가 그분이 받으시는 예배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통해 선교의 문이 열립니다.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과 반응이 있어야 예배가 살아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마 28:1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세를 가진 분이 왜 직접 가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내실까요. 여기에 복음의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위임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의 자리는 능력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님의 마음과 뜻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능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배와 선교, 성령의 능력은 분리되지 않고 연결돼 있습니다.

예배는 선교의 출발점이자 동력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선교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예배가 본질보다 형식과 외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예화처럼 우리가 부수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순간, 예배의 능력도 선교의 열매도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주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주님과 깊이 교통하는 영적인 예배, 그것이 회복돼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틀을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예배가 회복될 때 그곳에서부터 선교의 역사는 다시 시작됩니다.

교회 안에서든 삶의 자리에서든 선택과 결정은 늘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소해 보여도 공동체의 갈등을 낳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질을 놓치면 방향을 잃고 맙니다.

예배를 다시 붙듭시다.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권능을 덧입어, 선교의 자리로 다시 나아갑시다. 선교는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가 살아야 선교가 움직입니다.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