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군인의 마음도 지켜야

입력 2025-10-03 00:30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강력한 국방개혁으로 완전한 자주국방 태세를 갖춰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자주국방은 강력한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힘만으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더 큰 문제다. 이에 장병들의 마음부터 지켜내는, 군종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본다.

필자가 미국 유학 시절 병원에서 원목 인턴으로 일하던 때다. 수술 중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의료진은 숨을 죽이고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바로 당직 원목이었다. 원목이 도착하면 수술 집도의는 가족에게 결과를 알리고, 원목은 슬픔에 빠진 가족 곁을 지키며 위로와 사후 절차 논의를 맡았다. 그 순간 원목은 그저 성직자가 아니라 죽음과 상실 앞에 선 이들을 붙잡아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전쟁터도 다르지 않다. 전사자가 발생하면 지휘관은 군종장교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때로는 그 시간이 지체돼 후속 작전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에 미군은 군종장교가 전투 병력 가장 가까이서 활동하도록 ‘근접 원칙(proximity principle)’을 명문화했다. 이는 군종이 단순한 종교의례를 넘어 생사의 경계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지키는 본질적 사명을 지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군종 제도는 평시에 머문다. 군종장교는 장병의 종교 생활을 돕는 역할에 국한되고, 전투 현장에서 정신적 리더십은 제한된다. 계급도 대령에서 멈춰 제도적 위상은 늘 변방에 머문다. 분단국가라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부적절하다.

지난해 계엄 상황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 속에서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다. 전장에서 사기가 무너질 때 전투력은 서서히 붕괴된다. 무형의 전투력을 고양시키는 최고의 병과가 군종이다. 군종의 사명을 그저 예배 집례로 축소하는 것은 군대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군종은 전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상실과 두려움에 흔들리는 전우의 마음을 붙잡는 방패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군종장교를 준장 이상으로 예우하며 전투 현장에서 정신적 리더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 군은 여전히 장성 진급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병영문화 개선, 자살 예방, 마음 건강 지원 같은 과제들이 국가적으로 절실해진 지금, 이러한 현실은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개혁 4.0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군은 겉으로는 평시 체제처럼 보이지만, 실제 장병들이 마주하는 환경은 전시와 다름없다. 매년 군대 내 사망자 중 자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일 은밀한 괴롭힘과 폭력의 문화를 견뎌내는 일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군 생활 자체가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터인 셈이다. 이에 군종은 장병의 마음부터 챙기는 전시 군종 태세로 재정립돼야 한다.

군종장교 계급 상향은 그저 종교계의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이는 나라를 지키다 쓰러진 이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지키고, 남겨진 이들의 두려움을 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군대에서 인간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미 정훈, 법무, 의무, 간호와 같은 특수병과엔 장성급 장교가 활동한다. 군종장교에게 장성 진급의 길을 열어주는 일은 형평성의 문제를 넘어 장병의 생명과 마음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이제 국회와 국방부가 응답하길 바란다. 눈에 보이는 무기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전력을 강화할 때 진정한 자주국방이 완성된다. 늦었지만 전시 군종의 본질적 사명을 재확립하는 일과 군종병과에 힘을 실어주는 법 제도 개혁은 그 길을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