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카톡 탈출

입력 2025-10-04 00:38

“아, 이게 그 공포의 업데이트인가.” 지난주였다. 회사 동기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탄식이 터졌다.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남은 모든 이의 근황을 낱낱이 알려주는, 카톡의 새 업데이트 때문이었다. 연락처 저장이 일상인 직업 특성상 체감은 더 컸다. 오래된 예전 취재원과 지인까지 수천명 넘는 이들의, 요즘 말로 ‘TMI’가 한꺼번에 쏟아지자 피로부터 몰려왔다. 그 불만조차 카톡 화면에 털어놓고 있다는 게 웃지 못할 일이었다.

한국에서 카톡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휴대전화 없는 이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단순히 개인 간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사회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플랫폼이라서다. 초중고 시절엔 소위 반톡방, 대학에 가면 학과와 동아리 단톡방, 직장에선 부서와 동기 단톡방이 기다린다. 카톡으로 친목뿐 아니라 회의와 공지도 하는 한국인에게 카톡 없는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생애 전 과정에서 대외활동 대부분을 카톡에 의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한국인이 왜 카톡을 못 떠나는지 설명하기란 충분치 않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 일상 역시 카톡과 불가분의 관계여서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엔 백신 예약과 방역 QR코드, 마스크 지도, 정부 공지가 카톡으로 제공됐다. 이후에는 더하다. 정부 산하 수많은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고지, 인증 수단으로 카톡을 사용한다.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 주정차 위반부터 세금 체납 통보까지 받을 정도니 카톡 없는 삶이란 막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휴대전화의 다른 메신저처럼 마음대로 카톡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인 대부분이 쓰는 카톡을 활용해 공공 업무를 한다는 발상에는 ‘혁신’이라는 수식이 매번 따라붙어 왔다. 덕분에 수십억 예산을 아끼고 시민들이 공공서비스를 널리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비용 절감과 편의를 위해 공적 기능을 특정 플랫폼에 떠넘긴 일에 대가가 따르지 않을 리 없다. 그만큼 이용자는 해당 플랫폼을 떠나기 힘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이는 국가가 기업의 독점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카톡을 메신저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건 다름아닌 국가다.

사실 카톡의 변화는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광고를 넣지 않겠다던 초창기 공지와 달리 카톡은 이미 수년 전부터 슬금슬금 광고 노출 빈도를 높여 왔다. 이런 변화는 어쩌면 예측 가능하기도 했다. 국내 시장을 100% 가까이 차지한 시점부터 사용자를 늘려 성장하는 기존 전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추가 성장을 위해 카톡에는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워낙 큰 변화라 반발을 샀을 뿐 이번 업데이트 사건도 본질은 같다. 그런 시도가 가능했던 건 물론 그들이 독점 기업이라서다.

이익 추구 집단인 기업이 돈을 더 벌 궁리를 하는 게 비난할 거리는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그 기업이 독점을 유지할 수단을 정부가 일정 부분 제공했다는 점이다. 민간과 정부를 망라한 온 사회가 무비판적으로 특정 기업 플랫폼에 의존하는 지금 시점에선 대체재의 등장이 어렵다. 아무리 당장의 비용과 편의를 위해 한 선택이라지만 전 국민이 기업의 탐욕에 선택지 없이 노출된 현 상황에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카톡 공화국’이 우리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건 이미 체감할 기회가 있었다. 수년 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톡이 먹통됐을 때다. 업무 마비와 일상 중단을 겪은 뒤 상식 밖의 서버 관리와 대응책 미비가 드러났지만 우리 대부분은 카톡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다시 비슷한 장애가 생기거나 혹은 이번 같은 시도가 있더라도 결과가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보안 유출처럼 심각한 상황까지 발생한다 해도 과연 우리가 카톡을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우리가 카톡을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스스로 온전한 정책 수행 수단을 갖추려 힘쓰지 않고 민간 기업에 의존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일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처럼 한시라도 빠른 조치가 필요한 시국이라면 예외일지 모른다. 그러나 평시에도 이런 기조가 반복된다면 예산과 효율을 핑계로 정부 기능이 차츰 외주화되는 결과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과연 그게 얼만큼 공익에 부합하는 일일지 알 수 없다. 우리도 정부도, 슬슬 ‘카톡 없이도 괜찮은 사회’를 고민해볼 때가 됐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