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의 구속적부심이 기각된 지난달 24일 저녁, 충남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손 목사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교단의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총회는 장로교회의 최고 치리 기관이며 의결 기관이다. 긴급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기도회를 열자는 의견이 나왔다.
“목사가 어디로 도망을 가느냐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도주를 한다, 이게 말이 되지 않잖습니까.”
김인호 경남 김해 해오름교회 목사는 법원의 결정을 비판했다. 성명서 초안에는 “불의에 결코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저항할 것을 다짐한다”는 문구도 있었다. 반면 이세령 서울 복음자리교회 목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고 밝히고, 교회가 나라 법을 지키지 못한 점을 반성해도 모자랄 판”이라며 반대했다.
손 목사는 지난 대통령 선거와 부산 교육감 재선거 때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자고 예배 시간에 신자들에게 말하고 교육감 후보를 교회에 불러 대담한 혐의 등으로 선관위에 고발당했다. 그는 올 초 ‘이재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이재명 치하에서 배급받고 살지 않으려면 일어나 항거하라’ 같은 제목으로 주일 설교를 하기도 했다.
같은 교단의 한 목사는 “우리 지역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손 목사의 정치 설교를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찬반이 갈려 서로 싸울 뻔했다”면서 “나에게 손 목사처럼 설교하라고 요구하는 교인도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교회까지 논쟁에 휩쓸릴 판”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번 예장고신 총회에는 손 목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자는 안건을 3곳 노회가 제출했다. 충청서부노회장 임광섭 목사는 “교회의 정치 참여에 관한 견해가 엇갈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을 밝혀 달라”고 총회에 요청했다.
추석을 앞둔 1일 서울시내 곳곳에는 ‘교회 탄압 중단하라’는 야당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부산 세계로교회를 찾아가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우리도 정교분리를 지키고 싶지만 보수 정치 탄압의 연장선에서 교회 탄압이 이뤄지는 상황이라 교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인 장 대표는 “(교회 압수수색과 목사 구속으로) 국제 사회가 우리나라를 반문명 국가로 인식할 것”이라고 본보에 말했다.
여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종교가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당 안의 일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헌정 질서에 위협이 된다”며 “정교분리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지난 정권의 행태를 보면 그 부작용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교분리는 사실 기독교 역사의 산물이다. 서명삼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살육했던 30년전쟁을 겪으면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원칙이 만들어졌다”며 “유럽이 피의 대가를 치르며 만든 정교분리를 우리는 깊이 성찰하지 못한 상태에서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그 합의마저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시한 이유도 청교도 정신에 기원한다. 국교로 군림한 가톨릭의 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을 갖고자 신대륙에 왔다. 그런 미국에서도 정교분리가 흔들리고 있다. 찰리 커크 사망 이후 공화당 지지자들이 그를 ‘순교자’ ‘미국의 모세’라고 부르며 정치적 투쟁에 나서라고 교회를 자극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은 “예수를 믿는 신앙이 트럼프를 믿는 지지와 결합해 정치화하면서 신앙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헌법 20조 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종교 사회인 데다 개신교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기독교 인구는 불교와 유교보다 소수다. 기독교 이름을 내건 정당이 수차례 선거에 나섰지만 1석도 얻지 못했던 역사가 있다. 정치권에서 교회의 힘을 빌리려는 유혹은 항상 있었다. 선거철만 되면 교회를 찾아오고, 정치적 위기에 처하면 광장으로 나와 달라고 교회에 요청한다.
세계로교회 관계자는 “미국에선 2020년 선거 때 존 파이퍼 목사와 웨인 그루뎀 교수가 어느 후보의 정책이 더 성경적인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며 “한국에서도 선거철에는 교회를 찾아오면서 정작 기독교적인 정책을 요구할 때는 교회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성도들의 삶을 이분화시키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교회와 정치는 분명 역할이 다르다. 박재은 총신대 교수는 “정치와 교회가 서로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적 기관인 교회와 물질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관인 국가는 존재의 목적이 다릅니다. 서로 존중하며 자유를 허용해야 합니다. 다만 양치기의 막대기처럼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하는 건강한 관계가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회도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사회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특정 정권을 교회의 대변자로 여기거나 배척하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안환균 변증전도연구소장은 “좌파 대통령이 세워지면 하나님 뜻이 아니라 여기는 우파 신자들이나 그 반대 경우나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며 “누구를 통해서든 자기 뜻을 이뤄가는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을 모르면 우리나라만 특별한 나라여야 한다는 식의 애국심도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얘기를 금기시해온 교회의 분위기도 오히려 정교분리의 취지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은 “교회가 직접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선거 개입을 해서는 안 되지만 예언자적 비판 정신으로 살아가는 기독 시민을 기르는 교육과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진 신자들이 교회 안에 공존할 수 있는 문화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목사를 비판해온 ‘고신을 사랑하는 모임’의 정병오 대표는 “교회 안의 예배나 기도회에서 목사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진리인 것처럼 설교하는 것은 보수 신앙에서 용납할 수 없지만, 교회 밖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정치 활동을 하고 집회를 여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강원용 목사님이 1990년대에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시작했던 대화 모임처럼 다양한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서로 존중하면서 얘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방 종교부국장, 김혜원 이형민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