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는 허상이다. 지지율 25%짜리 정당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다. 단일대오로 여당과 잘 싸워 40%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을 때 스윙보터가 움직인다.” 국민의힘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장동혁 지도부의 외연 확장 전략을 이같이 설명했다. 8월 26일 출범해 한 달을 넘긴 장동혁호(號)의 전략은 ‘자강론(自强論)’으로 압축된다. 불확실한 중도보다는 확실한 보수 지지층 결집을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후 대선 지지율(김문수 후보의 41%)을 회복한 뒤 정치적 부동층을 공략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중도허상론’에 대해 당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외연 확장은커녕 강성 지지층이 내미는 청구서에 매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 전 대통령 계엄에 명확히 선을 긋지 못한 상태에서 중도 탈환에 더 애를 먹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내년 6·3 지방선거는 장동혁 지도부 자강론 전략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쩐지 기시감, ‘황교안 체제’
장 대표는 취임 후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신중론에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대구와 서울에서 두 차례 장외투쟁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를 주도했던 ‘세이브코리아’ 대표 손현보 목사가 구속되자 세계로교회를 방문해 “종교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정부 실정에 분노하며 싸우길 원하는 당원에게 반응이 좋다”며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는 걸 보면 장 대표의 투쟁 모드가 보수 지지층에 와 닿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 행보를 두고 2019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때와 유사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대표는 ‘여야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를 기점으로 강성 투쟁의 길을 택하며 취임 52일 만에 장외로 뛰쳐나갔다. 기저에는 야성 있는 모습으로 보수를 결집해 세력을 키운다는 ‘보수 대통합론’ 구상이 깔려 있었다. 대구의 한 의원은 “현 지도부는 황 전 대표 시절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며 “그때도 의석수가 모자라니 대외적으로 결집을 호소하는 스탠스로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대표의 투쟁 중심 보수 대통합 전략은 2020년 4월 총선 참패가 보여주듯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장외투쟁 과정에서 태극기집회나 전광훈 목사 세력과의 결합은 외연 확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소수 야당에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 없고, 절박함 속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저 해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지난 역사를 교훈 삼아 이번 지도부가 어떻게 저변을 확대할지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동혁 지도부’는 현 체제의 투쟁 방식이 황 대표 때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장 대표는 과거와 달리 확실한 기준과 흐름을 갖고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두 차례 장외 집회를 끝으로 당분간 민생 정책 발굴에 집중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엇갈리는 당내 시선
장동혁 지도부의 투쟁 전략에 당내 시선은 엇갈린다. 한 중진 의원은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 지지층이 요동치는 상황이고, 이들의 결집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파괴 시도를 당원부터 시작해 중도층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두세 달 안에 보수 지지자의 응어리를 다 풀어줘야 한다”며 “외연 확장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중도 허상론은 “전략 미스”라는 비판도 있다. 한 의원은 “중도가 없다는 발상 자체가 허상”이라며 “41%를 얻겠다고 오른쪽으로만 가면 백날 잘해도 양당제 국가에선 그냥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끝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어게인’과 부정선거 세력까지 보수라고 안고 간다면 중도 스윙보터는 우리에게 결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헛발질해도 지금의 국민의힘으론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한다”며 “자꾸 지지층에게만 소구할 게 아니라 민주당에 실망해 떨어져 나가는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찍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중도를 향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보수 정당이 되살아난 건 보수 결집을 호소한 황 대표가 아니라 중도보수를 표방한 이준석 대표의 등장 이후부터였다”고 강조했다.
장동혁 지도부의 투쟁 전략 구상에는 이른바 ‘개딸 팬덤정치’에 힘입어 이재명정부 창출을 이끌어낸 민주당의 사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우클릭 등 중도 확장을 위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건 ‘개딸’ 같은 강성 지지층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민주당 사례를 현재 국민의힘 상황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 컨설턴트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이재명정부가 정권을 잡은 것을 지지층 결집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고, 계엄이라는 윤석열정부의 거대한 실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며 “여야 모두 강성 지지층을 업고 이길 수 있는 선거는 당대표 경선뿐”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김어준씨 등 유튜버는 계속해서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가는데, 보수 스피커는 그보다는 ‘자기들만의 리그’ 안에 갇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강민 이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