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9일(현지시간) 공동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평화 구상’ 실행에 합의했다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향해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평화 구상의 핵심은 즉각적인 휴전 뒤 가자지구 재건 과도 위원회를 설립해 트럼프 대통령의 감독을 받는 것이다. 유럽과 아랍 주요국들은 일제히 환영했지만 하마스가 동의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소한 우리는 (전쟁 종식에) 매우 가까워졌다. 이 계획에 동의해준 네타냐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마스가 수락하면 내 제안은 모든 인질을 즉시 석방하되 7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따라서 인질들은 돌아올 것이며 이는 전쟁의 즉각적인 종식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네타냐후도 “전쟁 종식을 위한 당신의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질문을 받지 않았다.
백악관은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트럼프의 평화 구상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트럼프가 설명한 인질 석방뿐 아니라 가자지구 복구, 하마스의 무장 해제 및 군사 기반 시설 파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금지 등 상세한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이 아랍국 및 국제 파트너들과 함께 임시 국제안정화군을 구성해 가자지구에 즉시 배치한다는 조항도 들어갔다.
특히 가자지구는 휴전 뒤 ‘팔레스타인 위원회’의 임시 과도 통치로 운영되는데, 이 위원회는 트럼프가 의장을 맡는 또 다른 국제 과도 기구인 ‘평화위원회’의 감독과 지도를 받는다. 트럼프는 “나는 매우 바쁘지만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 지도자가 나에게 이 일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중동 문제에 오래 개입해온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 고위 인사들이 위원회에 포함된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도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관건은 하마스의 동의 여부다. 중재를 맡은 카타르와 이집트가 이번 제안을 하마스에 전달했으며 하마스는 성실히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하마스가 무장 해제를 하고 이스라엘의 전면 철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철수를 받아들이며 향후 가자지구 통치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하마스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번 발표는 하마스를 향한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하마스만이 유일하게 남은 당사자다. 다른 모든 측은 이미 수락했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타냐후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있어 더욱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가 합의를 거부하면 네타냐후의 가자지구 공격 강화를 승인하겠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구상에선 전쟁을 개시한 하마스뿐 아니라 아랍 국가의 인정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도 전후 가자지구 통치에서 배제됐다. 다만 가자지구 재건과 PA 개혁이 이뤄지면 “팔레스타인 자결권과 국가를 향한 신뢰할 만한 경로를 위한 조건들이 마침내 갖춰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제안은 주권적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가자지구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하면서 시작돼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번 평화 구상이 실현될 경우 가자지구 전쟁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아랍국 간의 오랜 갈등이 중대 분기점을 맞게 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