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모 만나러 왔는데요.” 현관문이 열리자 수줍게 얼굴을 내민 한 청년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달려 나온 이들은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오는 길 힘들진 않았니”라며 정겹게 반겼다. 환대가 낯설어 잠시 어색해하던 청년은 누군가를 발견하곤 비로소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이곳은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에 165㎡(약 50평) 규모로 문을 연 ‘이모집’이다. 성인이 되면서 보호시설을 떠나 홀로 서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매달 건강한 밀키트를 전달해 온 ㈔52패밀리(대표 이지남)가 청년들이 언제든 찾아와 이모들이 해주는 따뜻한 ‘집밥’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청년이 만나러 왔다는 이모는 그와 결연한 멘토다.
이모집은 추석 연휴를 1주일여 앞둔 지난 27일 일대일로 결연된 이모와 조카의 연례 정기모임 ‘밥톡톡’을 열었다. 대화를 뜻하는 ‘톡(Talk)’과 문을 두드리는 소리 ‘톡톡’의 의미를 담은 밥톡톡은 52패밀리가 밀키트를 전달할 때 이모가 결연한 조카에게 메뉴와 배송 일정, 레시피와 함께 따뜻한 안부를 담은 메시지를 보내던 것에서 시작됐다. “밥은 먹었니” “맛있게 먹고 힘내” 등의 짧은 안부가 서로의 일상을 묻고 마음을 나누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오프라인에서 함께 밥을 먹고 삶을 공유하는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 만나 함께 걷는 길’을 주제로 열린 이번 정기모임엔 자립준비청년인 조카 34명과 멘토 이모 25명이 모였다. 이중엔 몇 달간 메신저로만 연락하다 처음 만난 이들도 있었다. 맞이하는 이모들의 눈빛엔 이곳에 오기까지 용기를 냈을 조카를 향한 고마움과 따스함이 스며 있었다.
서울 이모집 공은영 센터장은 “자립준비청년이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이모집은 ‘모두가 엄마가 되어 줄 수는 없지만, 이모와 삼촌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공간”이라며 “이모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청년들이 쉼을 누리고 힘을 얻어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모집에서는 매주 수·금·토요일 저녁 이모들의 손길로 따뜻한 집밥이 차려진다.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엔 기도회가 열린다. 연락에 답 없는 조카, 부모가 없어 억울한 일을 겪은 조카 등의 사연이 이모들의 기도제목이다.
이날 모임에 나온 청년 김현미(가명)씨는 “처음 이모집에 왔을 때 느낀 건 따뜻함이었다. 어색했지만 곧 쉼 같은 공간이 됐고 만남이 잦아지며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괜찮다,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준 이모들 덕분에 간호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 이런 따뜻한 관계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모로 봉사하는 소미라씨는 “첫 만남을 앞두고 소개팅처럼 긴장되고 설렜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된다”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는 8일 추석 행사에도 많은 청년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