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위한 초대형 특수 유모차 절실” 엄마가 나섰다

입력 2025-10-01 03:00
김민규 예수아(오른쪽)씨 부부가 30일 경기도 고양 자택 근처 공원에서 딸 하랑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유모차가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집에 고립되는 부모들이 있다. 이른둥이(조산아)로 태어나 뇌 손상을 입고 생존한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다. 이들의 유모차는 더 무겁다. 10㎏짜리 인공호흡기를 먼저 싣고도 가래를 뽑아내는 석션기,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는 모니터까지 실어야 한다. 유모차는 ‘움직이는 응급실’이다.

왼쪽 사진은 가족의 외출 필수품인 인공호흡기. 오른쪽 사진은 산소포화도 측정기.

아이의 몸이 자라면서 난관을 맞닥뜨린다. 아무리 큰 유모차도 몸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맞춤형 휠체어는 무게가 25㎏에 달하고 9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결국 한 번 왕복에 20만원이 드는 사설 구급차에 의존해 병원 진료만 겨우 받는 고립된 삶으로 내몰린다.

뇌 손상 조산아인 다섯 살 하랑이의 몸이 더는 유모차에 맞지 않게 되자 어머니 예수아(35)씨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예씨는 30일 경기도 고양 자택에서 딸 하랑이와 함께 국민일보를 만나 “딸의 키가 유모차 길이 90㎝를 넘어서자 프레임에 아이 팔뚝이 쓸려 빨갛게 부어올랐다”며 “외출이 이제는 아이에게 힘든 일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이 고통은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답을 찾기 위해 예씨가 직접 만든 온라인 설문조사에 98개 가정이 응답했다. 저산소성 뇌 손상뿐 아니라 희귀질환부터 염색체 이상 등 아이들의 진단명은 제각각이었지만, 응답자의 90.6%가 현재 이동보조기구에 불만족했다. 한 부모는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는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기저귀를 갈 때 잠시라도 눕힐 수 있는 더 큰 유모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예씨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국내 유모차 기업 ‘와이업’의 문을 두드렸다. 유모차 제작 금형을 보유하고 있는 이 업체는 초기 시제품 개발비 3000만원을 전액 부담해 유모차 제작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유모차의 이름은 ‘하랑이’로 결정됐다. 세상에 없던 이 유모차는 키 110㎝ 아이도 누울 수 있도록 시트 길이를 늘리면서 시중 유모차 중 가장 큰 사이즈가 될 예정이다. 와이업 관계자는 “외출용 유모차를 쓰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며 “이 유모차 제작으로 이윤이 생긴다면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몸이 꽉 끼는 유모차에 탄 하랑이 모습.

하지만 예씨에겐 아직 최소 수량 200대의 제작비용 3억원을 확보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도움의 손길이 모여 특수 유모차가 필요한 가정에 전달하고, 지원받지 못하는 가정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하랑이는 2021년 10월, 30주 만에 콜라병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인 1.46㎏으로 태어났다. 출산 과정에서 뇌에 심한 손상을 입었고, 부부는 아이의 장례까지 준비했었다. “아이가 스스로 떠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끊나.” 예씨 아버지의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 결심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아이의 기저귀를 한 번 가는 데 40분씩 씨름하고, 밤새 2시간마다 침과 가래를 제거해줘야 한다. 신생아 중환자실 비용부터 재활치료, 특수 분유, 각종 의료 소모품비까지 4년간 들인 비용은 8000여만원에 달했다.

부부는 고된 시간 속에서 이제 호흡과 맥박수로 하랑이의 기분을 안다고 했다. 예씨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심박수가 편안하게 내려간다. 그럴 때 ‘하랑이가 좋아하는구나’ 하고 이해한다”고 전했다. 부부는 하랑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예씨는 “최근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라는 글을 보고 감정이입이 됐다”며 “저는 하랑이랑 함께 사는 게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랑이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하랑이를 통해 깊어진 신앙 덕분이었다. 경기도 고양 일산제일교회에 출석하는 예씨는 “하랑이가 아프고 나서야 완전하게 하나님께 엎드렸다. 수많은 것을 주셨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한 가지 이유로 원망할 수가 없었다”며 “하랑이 이름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라’는 뜻으로 지었지만, 이제는 베푸는 것이 진짜 사랑임을 배웠다”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