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뒷면에 0.3㎜ 샤프펜슬로 그린 로봇으로 제1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을 받은 김경두(36) 작가가 첫 개인전을 열었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벗이미술관에서다. 수상을 계기로 이 미술관 소속 작가로 선정된 뒤 개인전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지난 28일 미술관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첫 개인전인 만큼 2012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 14점이 나와 작품 세계의 변화를 일별할 수 있었다.
작가는 오직 샤프펜슬이나 볼펜 한 자루에 의지해 자폐 특유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로봇을 그린다. 자로 잰 듯 정밀하게 선들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로봇의 이미지를 시각화한다. 검은 연필선들이 만들어내는 밀도는 경이로워 거대한 중세 성당의 설계 도면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처음 샤프펜슬로 작업했지만 2022년부터 볼펜으로 도구의 변화를 가져왔다. 샤프펜슬의 경우 연필심이 부러질까 봐 초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지만, 볼펜은 그런 염려가 없어 심리적으로 편안했다. 작가는 “샤프는 또 검은색만 나온다. 하지만 볼펜은 여러 색이 있어 대상에 색을 입힐 수 있다. 제 그림 세계를 확장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에는 시계, 피아노 등 일상 물건을 모티브 삼아 로봇으로 변신시켰다.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대상 수상작도 인공위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로봇이었다.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로봇을 통해 가상의 신들의 세계를 다룬다. 초월자와 인간 사이, 중간 세계에 사는 로봇들이다. 외양은 로봇 같지만 형태가 벌레처럼 길쭉하거나 새를 연상시키는 것도 있는 등 예사롭지 않다. ‘드럭스 포뮬럭스’는 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종이 7장을 이어 붙여 긴 몸체를 하고 있다.
얼굴은 사라져 내장형으로 바뀌기도 했다. 또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인간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기계 로봇들의 세계에 대해 “뭐라고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그래서 “속단하지 않는 세계”이다. 큐레이터 박현서씨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대할 때 작가가 보여준 예단하지 않는 태도는 너무 쉽게 타인을 규정짓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고 적었다.
개인전은 11월 11일까지 진행되며 미술관 측은 내년에 뉴욕에서 전시를 여는 등 해외 홍보도 할 계획이다.
벗이미술관은 의료법인 용인병원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2015년 국내 최초 아웃사이더아트 전문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신경다양성 작가 4명을 소속 작가로 두고 월 120만원을 지원한다. 김 작가를 비롯해 김용원·이해·차동엽 등 전체 소속 작가 4명의 그룹전 ‘한없이 투명한 날들’은 경기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제2관 격인 기흥구 용구대로 ‘아트룸벗이’에서 10월 21일까지 한다.
용인=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