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 잇단 반미 발언에 제동 건 위성락 고언, 일리 있다

입력 2025-10-01 01:30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미국 비자 세미나'에서 진보당 관계자들이 '트럼프 경제 약탈 거부한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기습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관세협상과 관련한 여권 내 반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500억 달러(약 490조원) 선불 요구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9일 “전범국에나 물리던 ‘묻지마 배상금’”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내 강성 친명계 모임 ‘더민주혁신회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정도가 있다”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트럼프 압박은) 수탈과 예속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이러자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나서 “오버플레이(과한 언행)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동을 걸기에 이르렀다. 여권은 국정에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위 실장의 고언을 명심하기 바란다.

위 실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미국과의 협상이 첨예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미국에 대한 이야기(반미 발언)들이 협상의 레버리지(지렛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도 했다. 국가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여론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다. 하지만 정부 고위인사가 손사래를 칠 정도로 여권의 언행은 너무 거칠어 협상의 지렛대는커녕 방해만 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조치가 대단히 불합리한 건 맞다. 외환보유액의 84%나 되는 돈을 한꺼번에 현찰로 달라는 주문은 동맹의 양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리한 요구에 막말·선동으로 맞서는 게 정도는 아니다. 특히 정부 정책에 무한 공동 책임을 갖는 여당으로선 국민 감정에 편승하기보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더욱이 3500억 달러란 수치를 제시하고 초반 ‘3500억 달러↔관세 15% 인하’ 조건 합의에 성공적이라 홍보한 건 우리였다. 협상 결과에 여당은 한때 “실용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반면 트럼프와 백악관은 협상 전후 내내 ‘3500억 달러=현금 투자’ 임을 강조했다. 정부·여당이 미 측 주장을 허세로 여겨 대응에 소홀한 잘못도 있다. 따라서 일방적 ‘미국 때리기’는 협상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역 중심의 경제 구조, 저성장·신냉전 하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미우나 고우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여권의 대미 강경 발언은 해결책도 안될 뿐더러 협상의 발목을 잡을 소지가 크다. 오히려 한국 경제의 난관은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려 트럼프를 설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여당은 더 이상 민족감정을 자극하던 과거 야당이 아니다. 책임 못 질 말을 내뱉는 게 아닌 국정 동반자로서의 외교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