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장이 힘들다는 말은 요즘 어떤 감독이나 배우를 만나도 공통되게 듣는다. 관객이 찾지 않아 극장은 허덕이고, 영화 투자가 위축되니 제작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업계 종사자들에겐 생업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영화계 일각에서 긍정적 전망과 함께 회복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과연 영화산업의 호우시절은 끝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업계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영화산업에 위기가 없던 적이 있었나.’ 영화산업은 매번 위기를 맞았고,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늘 극복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를 타개할 동력은 관객이다.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볼만한 영화에 어김없이 반응한다.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개봉작 중 지난 7월까지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야당’ ‘미키17’ 세 편만이 관객 300만명을 동원했는데, 이후 두 달 새 500만명을 넘긴 작품이 세 편이나늘었다. ‘좀비딸’과 ‘F1 더 무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다.
정부의 6000원 할인쿠폰 배포에 따른 일시적 진작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적정 가격에 선택할 만한 영화가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웃음과 감동을 버무린 ‘좀비딸’은 전 연령대 관객을 만족시켰고 ‘F1 더 무비’는 스크린과 음향이 갖춰진 환경에서 극대화되는 극장용 영화로서의 쾌감이 있었으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단단한 원작 팬덤을 보유했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내는 동인은 결국 ‘좋은 영화’다. 다시 말하면 값을 치르고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영화계에선 자구책 마련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보고 있다. 가령 2억원의 놀라운 제작비로 만든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초저예산 실험작이었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는 지금까지 관객 92만명을 모으며 제작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 적은 예산으로도 잘 만든 영화는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본격적인 정부 지원은 영화 제작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영진위가 올해 도입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총예산 99억원을 투입해 한국영화의 ‘허리’ 역할을 하는 제작비 20억~80억원 규모의 영화 9편에 제작비 일부를 지원키로 했다. 오기환 심사위원장은 “한국영화가 어렵지만 해답은 분명 존재한다. 이번 사업이 해답 중 하나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원작으로 선정됐던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신청을 자진 취하하고 넷플릭스로 향한 것은 아쉬운 한계를 보여준다. 순제작비 80억원으로 책정된 영화인데 영진위 지원금은 15억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금액을 충당할 투자처가 마땅치 않았다. 거장의 작품조차 상업성을 잣대로 투자받지 못한다면 다른 영화의 실정은 어떻겠느냐는 한탄이 나온다.
다수의 영화인이 공감하는 해결책은 결국 제작비 감축이다. 배우의 노개런티 출연 등 다소 극단적인 실험을 해본 연 감독은 현실적으로 20억원 정도 예산으로 영화 제작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한국영화가 지금과 다른 형태로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이야기하면서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관계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국내 유수의 한 제작사 대표는 코로나19 이전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영화가 한 해 10여편 제작됐던 상황이 도리어 과잉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20억~30억원대 작품 위주의 탄탄한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지금이 거품을 거둬내고 다시 시작할 적기일 수 있다.
권남영 문화체육부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