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이번에 ‘조정 대신’으로 영전한다고 하네요. 아주 잘 됐습니다.”
서울 본사에 출장 간 상사가 전화로 전해온 인사 소식이었다. 과거 임금이 있는 대궐에서 일한 조정 대신에 빗대 내가 회장이 있는 서울 본사 임원으로 발령 난다는 얘기였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 일이 있기 정확히 2년 전 부하 직원의 비위 사건이 터졌다. 관리자 연대 책임을 물어 회사는 소규모 사외 독립 법인으로 나를 좌천시켰다. 믿었던 직원의 비리로 그간의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을 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가.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을 곰곰이 되돌아봤다. 기도와 성찰 끝에 내린 결론은 교만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겸손함을 잃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본문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 일이 잘 풀리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자 숨어 있던 교만이 고개를 쳐들었다. 주변 사람 모두 나를 연구소 임원 승진 1순위로 예상했다.
교만으로 인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관리자 업무를 소홀히 했고 그로 인해 부하의 비리를 예방하지 못했다. 독립 법인 좌천은 직원 비리가 아니라 내 교만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뼛속까지 겸손해지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 스스로 교만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하나님은 나를 더욱 낮추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작은 독립 법인으로 옮겨왔지만 내 직급은 임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모사(母社)의 한 부장이 나를 업무 파트너로 상대해주지 않았다. 늘 자기 밑의 팀장을 시켜 내게 업무 연락을 했다. 말이 업무 연락이지 항상 일방적인 지시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그는 하나님께서 보낸 훈련 조교란 생각이 든다.
자의 반 타의 반 겸손을 훈련하면서 2년을 보냈다. 긍휼한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이 말씀대로 나를 훨씬 더 높여주셨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만 일해온 나를 본사로 보내 전사 혁신을 총괄하게 했다. 파격 인사였다. 소위 ‘힘 있는 자리’로 오면서 다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애썼다. 이후 같은 그룹사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약력> △포항공대 공학 박사 △포항공대 법인 부이사장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 △포스코 부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