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역주행과 새로움, 그 사이에서

입력 2025-10-01 00:35

몇년 전부터 분 복고의 바람
세대 뛰어넘는 문화의 특성
갈등과 편견 극복할 실마리

몇 년 전부터 복고의 바람이 불었다. 음악과 음악인의 복고는 더는 새로운 일은 아닌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JTBC ‘싱어게인’을 비롯해 ‘슈가맨’에 이르기까지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따라 하는 유행이 들불처럼 번진 적이 있다. 또한 최근 출격한 SBS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방송은 2000년대 이후 출생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오디션 참가자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옛 발라드를 오늘의 감성으로 불러 이목을 끌고 있다. 성인음악으로만 인식되던 트로트 음악이 세대를 뛰어넘어 고른 사랑을 받는 것 역시 2030세대의 견인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음악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오래되고 맛있는 식당 찾기, 소위 할머니 패션으로 불리는 1970~80년대 패션이 재유행돼 화제가 되는 경우 역시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현상을 역주행이라 부른다.

역주행 현상은 예전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치가 재평가돼 다시 소환되는 흐름을 뜻하는데, 이 재평가의 기준은 단지 좋은 음악, 좋은 음식이란 미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역주행의 열정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새로움을 지향하는 문화 속에서 그 새로움의 어떤 핵심을 자극한 방아쇠 역할을 할 때 일어난다. 새로움의 갈망 역시 완전히 무에서 유가 아닌 만큼 예전에 열광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 유행이고, 이러한 역주행을 선도하는 것은 단연 문화다.

문화란 본래 순환하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추억의 장르로 묻혔다고 보는 아이템이 이후엔 새로운 세대가 맞이한 유행과 함께 무리 없이 섞여들기도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진 정서의 보편성에 있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각자가 가진 문화적 욕구와 근원적인 교감을 갈망하고 표현하는 상호 의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도구다. 그런 맥락에서 문화의 흐름은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해서 소멸하는 게 아니다. 이전의 정서적 교감이 지금의 교감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게 바로 문화의 힘인 것이다.

하지만 순환으로서의 복고를 찾는 역주행은 ‘좋은 것은 여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 통해’라는 식의 일원론적 해석의 그물망에서 해소되지는 않는다. 역주행은 지금의 시간과 유행 속에서 소환된 의미를 재해석하는 치열한 과정 중 하나로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역주행은 우리에게 늘 익숙했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다시 보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 오늘의 시대는 세대 갈등, 성별 갈등, 정치적 지지 성향에 따른 갈등, 더 나아가 종교적 갈등까지. 갈등과 충돌 속에서 어느새 고정관념과 편견이 견고히 뿌리박힌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문화적 측면에서의 역주행은 부드럽지만, 때론 확고하게 시간이 지났다 해서 뒤편으로 밀어 넣은 편견의 비늘을 벗겨주는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트로트 열풍에서 시작해 1980~90년대 노래를 2025년 스무살을 맞이한 청춘들이 즐기고 교감하는 행위는 순환하는 감성의 보편성을 새로운 유행의 틀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복고의 예스러움을 새것의 틀 안에 담으려는 일련의 시도를 보며 조심스럽게 갈등과 편견의 벽을 조금은 허물 수 있는 소통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오늘의 어르신과 청년세대가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처럼 깊은 신념, 가치관의 차이를 보인다 해도 문화의 공통분모를 공유한다면 세대 간 막힌 대화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그 문화의 보편성을 실마리 삼아 우리 모두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동료란 연대의식을 일깨워 주지 않을까.

한 곡의 음악이나 한 편의 영화, 드라마가 세상을 새롭게 할 순 없다. 다만 그 오브제를 기반 삼아 필연적으로 새로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오늘을 긍정적으로 소비하는 일은 필요하다. 긍정적인 문화 소비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식의 신호탄이 되어줄 것이다.

주원규
소설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