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공부하는 밤

입력 2025-10-01 00:33

자격증 필기시험을 치렀다. 인생을 좌우할 절박한 시험은 아니었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도 답안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짜릿한 해방감을 맛봤다. 시험 끝난 날의 홀가분함은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가 보다. 치열하게 몰입하는 시간이 있어야 그다음에 찾아오는 여유가 더욱 달콤한 법. ‘이깟 시험이 뭐라고 이렇게 신이 난담.’ 들뜨는 기분을 가라앉히려 해봤지만,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아이처럼 세상천지 가장 재밌는 하루를 보낼 거라는 기백이 샘솟았다.

오랜 날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고 싶어 가볍게 시작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세운 계획과 다르게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기 쉽지 않았다. 퇴근 후 겨우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풀면 강의실에 앉은 동기들의 얼굴이, 직장에서 겪었던 자잘한 일들이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맞다, 내게 그런 시절도 있었지.’ 노트에 연필을 굴릴 때마다 과거와 현재가 한 줄로 이어졌다. 뇌세포의 움직임이 둔해질 즈음엔 늦은 밤까지 불 켜진 창문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 불빛 속에도 나처럼 졸린 눈을 비벼가며 공부하는 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꿈을 이루고 싶어, 더 나은 직장을 위해, 배움의 시간이 그저 좋아서. 저마다의 이유로 선택한 공부의 밤들이 꺼질 줄 모르고 나와 함께 새벽을 향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던 의지와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자겠다고 버티던 끈기. 그렇게 나 자신과 겨루던 밤들은 다시 만나고 싶었던 감각을 선물처럼 안겼다. 이해의 순간에 찾아오는 쾌감, 몰입의 끝에서 오는 확신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생각해보면 공부는 결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합격이라는 목표와 별개로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감각들이 있다. 비밀은 거기에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힘이 담겨 있다는 것. 실기시험도 잘 준비해야겠다. 한바탕 재밌게 놀아야 하니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