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방 한쪽 벽면의 붙박이장을 향해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옷장 문이 0.5㎝ 정도 살짝 내려왔다. 한 여성이 옷장을 밀자 뒤로 밀려나더니 옆방 내부가 보이며 공간이 연결됐다. 벽 역할을 하는 가구들을 이동시켜 방과 방, 거실, 통로로 구분되는 경계를 자유롭게 재배치할 수 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넥스트 퍼니처’가 구현되는 모습이다.
지난 26일 방문한 경기도 용인 기흥구 동백지구 내 삼성물산 ‘넥스트 홈’ 테스트 베드(실증공간)는 삼성물산이 제시하는 미래 주거 기술이 집약된 공간이다. 연면적 554㎡, 지상 3층으로 조성된 테스트 베드는 전용 84㎡ 규모의 특화 세대 2곳에 넥스트 홈 기술을 적용했다.
핵심은 ‘넥스트 라멘(Rahmen)’ 구조와 ‘넥스트 인필(In-Fill)’ 시스템이다. 넥스트 라멘이 공간 변화의 시작이라면, 넥스트 인필은 공간 변화의 극대화다. 넥스트 라멘은 아파트 내부 기둥인 버팀대 없이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신개념 평면 구조다. 기존 벽식 구조 아파트는 ‘내력벽’으로 불리는 기둥들이 하중을 지지한다.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의 원인이기도 하다. 넥스트 라멘 구조는 수직 기둥과 수평 보로 하중을 지지해 내부 벽을 없애고, 공간을 자유자재로 분할·통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이렇게 확보한 대공간에 사전 제작 모듈을 서랍처럼 채워 넣는 시스템이 넥스트 인필이다. 생애주기에 따른 입주민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맞춰 집도 공간 구성·기능을 변경할 수 있게 한다. 넥스트 인필의 4가지 요소는 넥스트 퍼니처를 비롯해 넥스트 플로어(층), 넥스트 배스(욕실), 넥스트 월(벽) 등이다.
넥스트 플로어는 오피스 건물 이중 바닥과 일본 주택 건식 바닥의 장점을 결합한 신기술이다. 바닥 하부에 마련된 공간에 각종 배관을 설치했다. 건식 구조 특성상 난방 가동 시간 단축에 따른 에너지 효율 향상과 유지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넥스트 배스는 외부에서 사전 제작한 뒤 검수 과정을 거친 화장실이다. 기존 수작업 공정 화장실보다 균일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 넥스트 월은 이동·재배치가 가능해 방 공간을 늘리거나 분리할 수 있는 건식 벽체다. 마감재도 탈부착 가능해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인테리어 연출이 가능하다.
벽과 화장실 위치를 옮기는 데엔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기존 인테리어 공사 시간과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고 간편하다. 변동규 삼성물산 주택기술혁신팀장은 “미래 아파트는 입주민의 삶에 맞춘 특별한 공간으로 유기적 진화를 거듭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