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산망 마비 책임 놓고 ‘네 탓’ 공방만 하는 여야

입력 2025-09-30 01:30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의 유리창이 깨져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전산망 마비 사태로 국가 행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흔들리는 준비상사태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사태의 해결보다 상대방을 향한 비난에 힘을 쏟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책임 있는 자세 대신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국민 눈높이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사과를 “책임 전가식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규정했다. “취임 100일이 넘도록 핵심 인프라 점검이 없었다”라며 이재명정부의 총체적 무능을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카카오톡 먹통 사태와 전산망 장애를 겪고도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윤석열정부로 돌렸다. 국민은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는데 정작 정치권은 “네 탓” 공방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이 진짜 듣고 싶어 하는 대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심한 노릇이다.

이번 사태는 사실상 예고된 참사였다. 충남 공주에 있는 ‘재해복구 전용 데이터센터’는 2008년 추진돼 2012년 가동을 목표로 했지만 사업자 유찰과 예산 증액, 감리비 부족 등으로 18년째 문조차 열지 못했다. 지난해 건물은 완공됐지만 재난복구 시스템은 구축되지 않아 공정률은 아직 60%대다. 만약 공주센터가 제 기능을 다했다면 피해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비상 인프라가 정치적 무관심과 행정적 태만 속에 방치된 결과가 오늘의 혼란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과거 책임 공방이 아니다. 전산망 장애가 불러온 혼란은 정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국가 전산 시스템의 이중화와 현대화 부재다. 감사원 지적과 전문가 권고가 있었음에도 서버와 배터리 교체, 백업 체계 확충 같은 기본적 조치조차 등한시한 게 근본 원인이다. 이는 특정 정권의 잘못에 국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정치권 전체의 직무유기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국가 위기 앞에서조차 정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데이터센터 안전 관리 강화, 전산망 이중화 의무화, 클라우드 기반 재해 복구 체계 마련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국민은 빠른 복구와 재발 방지를 원한다. 여야는 초당적인 협력으로 예산과 법안을 뒷받침해 국가 시스템을 지키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존재하는 최소한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