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의 시작은 도로 위 사고였다.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밤길을 운전하던 에그발(에브라힘 아지지)은 갑자기 튀어나온 개를 치어 죽이고 만다. 엔진 손상으로 차가 고장 나 멈추자 인근 정비소에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정비소 주인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는 순간 얼어붙는다. ‘삑-삑-삑-.’ 너무도 끔찍해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 소리를 다시 마주한 탓이다.
수년 전 정보국에 끌려갔을 때 자신을 고문한 요원의 의족에서 나던 소리다. 복수심에 휩싸인 바히드는 에그발을 미행해 납치한다. 산 채로 땅에 묻으려던 순간, 자신은 교도소에서 일한 적 없다는 에그발의 말에 멈칫한다. 수감 당시 눈이 가려져 있어 상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확신을 얻고자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가 물어보지만, 같은 처지였던 그들은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한다.
이란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사진)은 대담하고도 거침없다.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무도한 사회 권력을 향한 비판으로 질주해 나간다. 인물의 트라우마와 도덕적 혼란이 전이되며 관객은 극에 빠져들게 된다. 고문으로 존엄성을 짓밟힌 이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모습은 뭉클하다.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파나히 감독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써클·2020),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택시·2015)에 이어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다. 현존하는 감독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세웠다.
반사회적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두 차례 수감된 파나히 감독은 2022~2023년 7개월간의 수감 생활 중 다른 수감자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오는 1일 개봉, 103분, 15세 관람가.
권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