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협상 후속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환율도 급등세를 보이며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한때 마비되는 사태까지 겹쳤지만 국회는 대책 마련은커녕 정쟁만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와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표결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힘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집회까지 열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흔들리는 행정부를 다잡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국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야는 28일에도 국회 상임위의 명칭을 변경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필리버스터 공방을 이어갔다. 지난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상정 때부터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과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까지 이어져 29일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 전산망 셧다운 사태 후 수습을 위한 필리버스터 중단을 제안했으나 송언석 국힘 원내대표는 “악법 강행처리 중단이 먼저”라며 거부했다.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힘은 서울에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주말 대구에 이어 수도권에서 장외 집회를 연 것인데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론전에 나선 모양새다. 여당 내에도 정부조직 개편이나 법원 압박과 관련해선 이견이 있고, 야당 내에도 장외 투쟁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있지만 여야 지도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성 기조로 일관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정치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난항을 겪는 관세 협상이나 전산망 마비는 국가적 위기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선 국민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쟁에서 벗어나 뭉쳐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여당은 앞장서 싸움을 걸고 있다. 국가적 위기 극복에 힘을 합쳐야 할 야당은 나 몰라라 하며 모든 책임을 여당에 미루고 있다. 지난해에도 그 전해에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국회는 정쟁만 있고 민생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고 국회 다수당이 바뀌어도 차이가 없다.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해소해줘야 할 국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