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이하 95% 이상이 걸려
중증 진행… 폐렴 원인 34% 차지
사망 위험도 독감의 최대 2.5배
올 초 예방 항체 주사 국내 도입
해외 연구서 감염 70% 줄여
높은 비용 문제… 25개국 공공 지원
중증 진행… 폐렴 원인 34% 차지
사망 위험도 독감의 최대 2.5배
올 초 예방 항체 주사 국내 도입
해외 연구서 감염 70% 줄여
높은 비용 문제… 25개국 공공 지원
가을·겨울이 되면 부모는 아이들이 인플루엔자(독감)나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생아 등 영유아를 둔 부모라면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유행하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에 더 노심초사한다. 2세 이하 영아 95% 이상이 최소 한번 감염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바이러스인 데다, 성인은 가벼운 감기 증상에 그치지만 해당 연령대에선 모세기관기염, 폐렴 같은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아서다. 기침·재채기로 튀어나오는 비말 혹은 접촉 전파가 주된 감염 경로이고 평균 잠복기도 5일 정도로 길어 전염력이 강한 편이다. 갓난아기는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등에서 집단 감염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RSV 입원 환아 대부분 건강했던 영아들
29일 국제 학술지 ‘BMC 감염병’ 등에 2020년 발표된 논문을 보면 RSV는 국내외 영유아 폐렴 원인의 34%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파라인플루엔자(19.7%), 라이노바이러스(18.8%), 메타뉴모바이러스(7.8%), 아데노바이러스(7.1%), 인플루엔자(5.2%), 보카바이러스(3.8%), 코로나바이러스(2.0%) 순이었다.
대한소아감염학회 연구 이사인 최영준 고대안암병원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영유아 호흡기 감염병 관리 방안 개선’ 정책 토론회에서 “RSV 입원 환아의 80~90%는 건강했던 영아이고 그중 많은 수가 중증으로 진행돼 중환자실 치료, 일부는 인공호흡기 치료까지 필요한 사례도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RSV에 걸린 소아는 인플루엔자보다 증상이 오래 지속되고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며 감염된 영아의 사망 위험은 인플루엔자 보다 약 1.3~2.5배 높다”면서 감염 예방과 치료, 관리 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신으로 감염 차단이 가능한 여타 소아 감염병들은 국가필수접종(NIP)을 통해 예방이 이뤄지지만 RSV는 그간 백신 같은 접종 수단이 없었다. 팔리비주맙(시나지스)이라는 ‘항체 약물’이 RSV 예방 수단으로 쓰여왔다. 다만 미숙아나 선천성 심장질환 등 감염되면 위험해지는 영유아에 한해 월 1회 근육 주사로 투여됐다. 즉 건강한 모든 영유아가 아닌, 고위험군의 예방 관리 목적의 제한적 사용에 그친 것. 게다가 반감기가 짧아 유행 시즌에 모두 5회를 맞아야 하고 약가가 높아 건강보험이 제한적으로 지원됐다.
그런데 지난 2월 장기 지속형 RSV 예방 항체 주사 니르세비맙(베이포투스)이 국내에 도입됐다. 단 한 번의 주사로 약 5개월간 면역효과가 지속돼 백신처럼 작용하는 약물이다. 항체 주사는 바이러스와 싸워 면역 효과를 내도록 이미 만들어진 항체를 투여하는 일종의 ‘수동 면역’ 개념이다. 반면 백신은 바이러스 항원이 침투하면 면역 체계가 이를 기억해 체내에서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능동 면역’ 방식에 해당된다.
최 교수는 “특히 첫 돌 되기 전 영아가 첫 RSV 유행 시즌에 1회 투여해 전체 유행 기간 보호가 가능하고 조산아뿐만 아니라 모든 영아를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독감 예방 접종처럼 보편적 접종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국외에선 RSV 예방 표준으로 자리 잡아
해외 임상연구에서 니르세비맙을 접종한 경우 미접종군에 비해 RSV로 인한 폐렴 등 하기도 감염 발생을 70% 줄이고 입원율을 약 83% 감소시키는 높은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 이에 따라 국외에선 영유아 RSV 예방을 위한 보편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2023년 니르세비맙 승인 후 모든 영아 대상 접종을 권고했으며 연방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 영아에게 무료 지원하고 있다. 일반 영아도 민간보험을 통해 접종비를 지원받는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정부 차원의 신생아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도입해 모든 영아에 무료 접종을 시행 중이다. 현재 해당 항체 주사를 도입한 56개 국가 중 25개국에서 공공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올해부터 생후 6개월 미만 모든 영아에 접종을 권고하고 있으나 아직 국가 접종지원에는 포함되지 않아 접종비 전액을 부모가 부담하고 있다. 이 항체 주사는 1회 접종에 40만~70만원이 든다.
일선 의료 현장에선 RSV 유행철을 앞두고 이번 달부터 접종을 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용 부담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손영래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영유아 RSV 항체 주사의 전 세계 지원 동향은 지난해부터 파악하고 있으며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다만 아직 국내에는 해당 약물의 비용 효과성에 대한 분석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우선 비용 편익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또 기존의 항체 주사제가 건강보험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약제가 별도 예산으로 지원되는 NIP에 도입할 수 있을지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RSV 등 영유아 호흡기 감염병의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는 항생제 오남용 감소와 내성균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