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개발은 확률 게임이다. 실패 확률이 성공 확률을 압도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파보기 전까지 석유·가스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추정할 뿐이다. 시추 후 석유·가스가 나와도 상업성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6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대왕고래 프로젝트’ 발표는 가정에 가정을 덧댔다. 시추 전 물리탐사와 탄성파 자료 등을 기반으로 한 탐사자원량을 근거로 삼았다. 상업 생산이 가능한 매장량 확인 한참 전 단계다. 그마저도 확률 10%의 가장 낙관적인 ‘140억 배럴’을 부각시켜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같은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주시면 좋겠다”는 윤 전 대통령의 당부는 사실 자신에게 했어야 했다.
지난 21일 한국석유공사는 동해심해가스전 유망구조 중 대왕고래 시추가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 2월 예정에 없이 시추 결과를 설명한 것과 같은 결과다. 당시 해당 관계자는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언급과 관련, “지난해 발표는 생각지 못했던 정무적 영향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장관께서 비유로 든 것 자체가 부각됐다”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진 후 정치권에선 프로젝트 전면 재검토 요구가 불거졌다. 21일 발표 후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기 프로젝트’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장밋빛 전망’을 부풀린 만큼 그에 따른 후폭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실패만 확인하지 않았다. 나머지 유망구조 등에 대한 2차 시추는 계속 추진한다며 복수의 외국계 기업 입찰 참여 사실을 알렸다. 업체명은 밝히지 않았으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업체 입찰은 동해심해가스전 유망구조 7곳 등에 대한 물리탐사·탄성파 자료와 1차 시추 결과를 검토한 후 이뤄졌다. BP는 ‘세븐 시스터즈’에 포함된 석유 메이저로 여러 곳의 해상 유전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해심해가스전 사업을 사기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윤 전 대통령이 서둘러 대왕고래를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성급한 면이 있다.
자원 개발에 따른 성과는 정권이 소유할 수 없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긴 시간을 들이는 자원 개발이 정권의 소유가 되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어달리기처럼 바통을 이어받아 꾸준히 달려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자원 개발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지만 자원 개발의 필요성을 깨닫고 제1차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은 김대중정부 때인 2001년이다. 이후 10년 단위의 자원 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예멘,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한국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은 여전히 낮다. 2015년 15.5%로 정점을 찍은 후 2023년 기준 11.3%다. 한국과 비슷한 처지의 일본은 2015년 27.2%에서 2023년 37.2%로 상승했다. 2020년 40.6%까지 올랐다가 떨어졌지만 2030년 50%, 2040년 60%를 목표로 내걸 만큼 야심차다.
동해심해가스전은 해외 업체와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다만 그만큼 그들의 지분을 더 인정해야 한다. 성공 확률이 낮은 사업 특성에다 정치적 부담까지 더해져 추후 협상 여건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 현 정부는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전 정권이 자원 개발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해서 같은 프레임에 갇힐 필요는 없다.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의 판단에 따른 결론을 내릴 수 있길 바란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