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퇴직연금 의무화 논의를 본격화한다.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기금화’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기금형을 도입한 해외사례 검토에 착수했다. 노후빈곤의 심각성을 고려해 국정과제로 확정된 퇴직연금 의무화 정책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연속 정책토론회의 1차 주제를 ‘퇴직연금 개선방안’으로 잡고 29일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연금 전문가들과 노동부 담당자가 참석해 현행 퇴직연금제도의 문제점과 국회에 발의된 퇴직연금 관련 법안도 살펴볼 계획이다.
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이다. 퇴직연금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퇴직연금은 대부분 가입자(개인 또는 회사)가 개별 금융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운용되는데, 이를 공적기금으로 한데 모아 운용하는 ‘국민연금 모델’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부가 퇴직연금제도를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하면 가입자가 퇴직연금 보험료를 매달 내고, 이렇게 모인 퇴직연금기금을 다양한 투자로 수익을 낸 뒤 개인에게 연금 형태로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퇴직연금을 기금화하면 현재 2%대에 불과한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도 높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퇴직연금공단법안은 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해 퇴직연금제도의 관리·감독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공단 산하에 업무를 뒷받침할 퇴직연금연구원을 둘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산하에 국민연금연구원을 두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다.
정부도 기금화에 무게를 두고 해외사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부는 지난 16일 ‘기금형퇴직연금제도 수탁자책임 확보 등을 위한 방안 연구’를 주제로 정책연구용역 입찰공고를 냈다. 퇴직연금 기금형 도입 국가인 영국·호주·미국을 대상으로 퇴직연금기금의 수탁주체, 설립요건 등을 분석한 뒤 한국형 기금형 제도를 구상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선 국민연금도 기금운용의 낮은 수익률과 불충분한 연금액 등으로 국민 불신이 상당한데 퇴직연금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28일 “지금은 가입자가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 중 선택하게끔 하는데 기금형을 하면 국민연금처럼 국민의 선택권 없이 맡기는 게 된다”며 “기금을 맡은 사람들이 책임감 있게 운용을 잘하는 것이 기금형의 관건인 만큼 국가가 관리·감독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