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위협하는 ‘죽음의 골절’… 선제적 대응시스템 중요

입력 2025-09-30 00:12
최근 국내 최초로 낙상의학센터를 연 바른세상병원 엄상현 센터장이 낙상 사고로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은 60대 환자의 다리를 올리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60~70%가 주로 집안에서 발생
골밀도 낮아 넘어지면 큰 부상
특히 고관절 골절은 치명적
환자 1년 내 사망률 20~30%나

예방 최선이나 신속한 대처 중요
일부 병원 협진시스템 구축
미·일 등 일찍부터 예방 프로그램
국내는 아직 미흡한 수준
의료체계에 적절한 보상 필요

60대 주부 이모씨는 얼마 전 아침에 냄비의 찌개가 끓어 넘칠 것 같아 식탁에서 급히 일어서다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이 사고로 오른쪽 고관절(엉덩이 관절)이 부러져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고령 인구의 증가로 이 같은 낙상 사고가 급격히 늘고 있다. 고령층은 골밀도가 낮고 근육량이 적어 작은 넘어짐에도 큰 부상을 입거나 자칫 심각한 합병증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 낙상 예방 대책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일부 의료기관은 낙상의학센터를 신설하는 등 의료적 대응 시스템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도 최근 수립한 제1차 손상관리종합계획(2026~2030년)에 노년기 주 생활공간 중심의 낙상 예방을 포함했다.

초고령사회 낙상대책 목소리 커

질병관리청 최근 발표에 의하면 낙상은 자살(50.3%) 교통사고(11.8%)에 이어 손상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3번째(9.0%)에 해당됐다. 입원 원인으로는 낙상이 51.6%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응급실 방문 손상 환자 8만6633명의 약 40%는 낙상이 차지했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의 7.2%가 1년간 낙상을 경험했고 85세 이상에선 13.6%로 상승했다. 고령층 낙상 사고는 일상상활에서 주로 발생한다. 낙상의 60~70%는 거실, 침실, 화장실 등 집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낙상으로 인한 흔하고 중대한 질환은 고관절 골절과 척추 압박골절, 머리 손상 등이다. 특히 넓적다리뼈와 골반뼈를 연결하는 고관절의 골절은 노인에게 ‘죽음의 골절’이라 불릴 만큼 치명적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고관절 골절 환자의 1년 내 사망률은 20~30%에 달하고 수술 후에도 1년 내 사망률이 14.7%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1년간 고관절 골절로 내원한 환자는 4만3622명으로 60대 이상이 93%에 달했다.

지난 5월 국내 최초 낙상의학센터를 신설한 보건복지부 지정 관절 전문 바른세상병원의 엄상현(정형외과 전문의) 센터장은 29일 “고관절은 앉고 서고 걷는 기본적 활동에 관여하기 때문에 골절이 발생하면 장기간 침상 생활이 불가피하다. 이는 폐렴이나 욕창, 혈전으로 인한 심장마비, 폐색전, 뇌졸중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 낙상 사고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약 사고가 발생했다면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낙상의학센터는 낙상으로 인한 골절 및 관절 부상, 고관절 손상, 뇌 손상 등 연관 질환의 협진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한팀을 이뤄 원스톱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단순히 수술 치료에만 국한됐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보행 재활, 낙상 재발 및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낙상 발생 시 골절 최소화를 위한 적절한 골다공증 치료 관리도 병행한다.

지역사회-병원 ‘협업’ 예방·관리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은 일찍부터 노인 낙상 위험을 평가하고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거나 보건소 및 의료기관과 협력해 시행해 오고 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65세 이상 낙상 예방을 위한 임상 전략인 ‘스테디(STEADI)’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의 안전을 증진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오타고대학이 개발한 낙상 예방용 ‘오타고 운동 프로그램’을 전국 단위로 보급 중이다. 29개국에서 8300명 이상의 전문가가 훈련받아 전 세계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도입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재택 기반의 의료·돌봄·생활지원 서비스)에 낙상 예방을 연계하고 있다. 지역 보건소와 요양시설, 의료기관 등이 협력해 낙상 예방 교육, 운동 프로그램, 집안 환경 개선을 통합 추진하고 있다. 병원이나 지역 보건소가 의사, 간호사, 작업치료사 등으로 팀을 꾸려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서 실내 구조, 조명, 바닥 상태, 욕실 안전성을 평가하고 낙상 위험 요소 개선 조치를 제안한다. 오사카의 한 재활병원은 낙상 경험자 대상으로 퇴원 1개월 내에 자택을 방문해 보행 동선, 가구 배치, 화장실 접근성 등을 점검하고 개선해 준다. 일본의 많은 지자체가 의료기관과 협력해 낙상 예방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대응이 다소 늦었지만 질병청이 2023년 노인 낙상 예방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 시범 운영을 거쳐 보급 중이다. 또 일부 대학병원에서 낙상 예방 교육 및 낙상 관련 분석을 시행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의 관심이나 지원이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민간병원에서 낙상 퇴원 환자 대상 방문 컨설팅 및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노력과 시간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 의료체계에는 이런 활동에 수가(서비스 대가)가 마련돼 있지 않다.

엄 센터장은 “고령층 낙상은 향후 사회적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앞으로 국가 주도의 표준화된 프로그램이나 지침 개발 및 지원, 관련 의료기관 간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자체 차원에서 낙상 예방을 위한 환경 정비 지원, 미끄럼 방지 시설 보급, 욕실 손잡이 설치, 가정 내 안전 점검 프로그램 등을 체계적으로 연계·지원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노인의 독립적인 생활 유지와 의료비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른세상병원 낙상의학센터는 향후 해당 지자체와 협력해 노인 낙상 대응의 선도적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