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의 해양 이야기] 심해 탐사 가로막는… ‘압력’이라는 거대한 벽

입력 2025-09-30 00:32

높은 수압, 인간에 매우 위험한 환경
탐사장비 파손 등 R&D에 큰 걸림돌
해양을 탐험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바다의 힘과 공존하는 방법 찾는 여정

바다의 깊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그만큼 높은 압력을 뜻한다. 2023년 6월 미국의 관광용 심해 잠수정 ‘타이탄’이 북대서양 해저에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호’를 보기 위해 잠수하던 중 연락이 갑작스럽게 끊어졌다. 사고 나흘 후 선체 잔해가 약 3800m 깊이 해저에서 발견됐고, 미국 해안경비대는 잠수정 내부 폭발로 탑승자 5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잠수정이 심해에서의 극심한 수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광용 심해 잠수정 ‘타이탄’이 2023년 6월 북대서양 해저에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보기 위해 잠수하고 있다. 타이탄은 4일 후 잠수 중 높은 수압에 선체가 파괴된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해양에서 압력은 수심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커진다. 압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물의 무게에 있다. 수심이 깊어지면 위에 있는 물기둥의 무게가 증가하고, 이 무게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누르면서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압력은 약 1기압씩 증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1기압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대기압으로, 이는 1㎠ 면적에 약 1㎏의 공기기둥 무게가 작용하는 압력이다. 즉 해수면에서 지구 대기권 끝까지 이어지는 공기의 무게가 만들어내는 압력이다.

수압은 깊이에 거의 정비례하며 증가하는데, 바닷속에서 수심에 따른 압력 변화 폭은 대기 중에서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다. 물이 공기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이다. 대기압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낮아져 고산지대에서는 해수면보다 압력이 낮다. 예를 들어 평균 고도가 4000m인 티베트 고원에서 대기압은 0.6기압 정도로 떨어진다. 반면 바닷속에서는 수심이 10m일 때 2기압(공기 1기압과 물 1기압), 100m에서는 약 10기압, 4000m에서는 무려 400기압에 달한다. 이는 대략 대형 버스 4대가 어른 손바닥에 수직으로 쌓여 있을 때 느껴지는 압력과 비슷하다.

수심 2000m에서 원래 크기의 3분의 1 정도로 압착된 스티로폼. 필자 직접 촬영

이와 같은 수심에 따른 수압 변화는 실험을 통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산음료 캔의 내부 압력은 약 2~3기압으로, 이는 수심 10~20m 깊이의 압력과 비슷하다. 이 깊이에서는 캔을 흔들어도 탄산이 튀지 않으며, 지상에서처럼 ‘펑’ 하고 터지지도 않는다. 또 다른 흥미로운 실험은 스티로폼 컵을 깊은 바닷속에 내려보내는 것이다. 해양 관측 장비에 컵을 묶어 수천m 아래로 내려보낸 다음 끌어올리면 컵은 매우 작아진 크기로 돌아온다. 내부의 미세한 공기층과 스티로폼 구조가 강한 수압에 의해 완전히 눌린 결과다. 컵 표면에 그림이나 글씨를 미리 그려두면 줄어든 형태로 남아 인상적인 심해 기념품이 된다. 작아진 컵은 수압이 얼마나 강력하게 물체에 작용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압력의 메시지다.

물속에서 압력은 깊이와 물의 무게에만 의존하며, 수면 면적이나 부피와는 관계없다. 즉 작은 수영장이든 넓은 호수든, 같은 깊이의 수면 아래에 있다면 물체가 받는 압력은 동일하다. 바다에서도 이 물리적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또한 물속에서 압력은 특정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위, 아래, 옆 등 모든 방향에서 균등하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물체는 사방에서 동일한 압력에 둘러싸이게 되는 셈이다. 압력을 만드는 힘은 중력처럼 방향을 가지지만, 압력 자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의 특성은 물속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을 통해 관측되기도 한다. 2011년 버뮤다 해양과학연구소의 다이버들이 실시한 실험에서는 해수면 아래 18m 깊이에서 깨뜨린 날계란이 물속에서 터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며, 마치 해파리처럼 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해수면보다 약 2.8배 높은 수압이 계란을 사방에서 눌러 제거된 껍데기 대신 보이지 않는 압력막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은 강력하게 작용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심해 잠수정의 선실이 대부분 구형인 것도 같은 이유다. 구형 구조는 모든 방향에서 오는 압력을 가장 균형적으로 분산시켜 극한 환경에서도 구조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다.

공기는 압력이 가해지면 쉽게 압축되지만 물은 압축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공기와 달리 아무리 높은 압력도 물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심해의 엄청난 수압이 인간에게 매우 위험한 환경인 근본적 이유가 된다. 인간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문제는 몸 안에 있는 공기다. 폐나 코처럼 공기가 들어 있는 기관은 강한 압력에 쉽게 붕괴할 수 있어 심해에서는 생존이 극히 어렵다. 사람의 몸은 약 1기압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람이 맨몸으로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약 10m에 불과하다. 반면 심해 동물은 다르다. 이들은 몸에 큰 공기주머니가 없고, 고압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특수 단백질과 효소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연한 신체 구조를 가져 높은 수압에도 찌그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하고 적응해 왔다.

심해의 극한 수압은 탐사 장비 파손, 센서 오작동, 통신 두절 등 해양 연구와 개발에서도 큰 걸림돌이다. 한 예로 수심이 약 1만1000m인 마리아나 해구는 무려 1100기압에 달하는 극한 압력이 인간의 접근과 장비 운용에 있어 가장 큰 물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심해 탐사는 해양학 연구, 해저 지도 작성, 자원 개발, 관광 등 다양한 목적에서 매력적인 도전 과제이지만 현재 우리가 심해 대부분을 아직 탐사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다. 인류가 도전해야 할 가장 극한의 과학적 현장 앞에 무엇보다 압력이라는 거대한 벽이 버티고 서 있는 셈이다.

해양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압력실이며, 우리가 심해로 향할수록 이 압력은 절대적이고 냉정한 방식으로 한계점을 보여준다. 결국 해양의 벽은 물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숨어 있는 압력이다. 해양을 탐험하고 이해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압력을 견디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 힘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