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보완 필요한 비핵화 구상

입력 2025-09-29 00:35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 해법으로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남북교류(Exchange)와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의미하는 ‘엔드’는 처음부터 완전한 비핵화 목표보다는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해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한반도 평화의 최대 장애인 북핵의 종국적 목표는 ‘비핵화’다. 이재명표 단계적 비핵화 전략은 문재인정부의 ‘핵 동결 입구론’과 맥락이 같다. 이는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면서 핵·미사일의 능력 고도화 ‘중단’과 ‘축소’를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해법이라는 이 대통령의 설명에도 잘 나타난다. 상황 악화를 방지하자는 고육지책으로 북한과의 공존에 방점이 있다.

지난 30여년간 남북과 국제사회는 비핵화 논의를 계속했다. 남북은 이미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고, 2003~2009년 6자회담에서 북핵 ‘동결’을 시작으로 ‘불능화’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폐기한다는 ‘9·19 남북합의’에도 서명했다.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대북 보상을 약속했지만 결국 북한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고도화하자 문재인정부는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직접 해법을 모색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해 북·미 회담까지 성사됐으나 2019년 하노이 회담을 끝으로 결렬됐다. 비핵화의 개념과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논의가 전개됐고, 북한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전혀 받아들일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미 회담에 관심을 표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입장도 기본적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다.

더욱이 이미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한국이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이며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대상이라고 재차 언급했다. 또 북한 헌법에 ‘핵 보유’를 공식 명시했다면서 ‘비핵화’는 결코 없을 것임을 천명했다. 이는 남북 관계의 적대성을 극대화하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연대 강화 및 ‘핵보유국 북한’의 전략 가치 제고를 통해 장기간 비타협·강경 노선을 유지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려를 살 만한 다음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분명한 해석이 필요하다. 우선 북핵의 ‘동결’과 ‘중단’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없는 ‘중단’은 검증 불가다. 또 이미 핵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에 ‘동결’은 결국 북핵을 우리가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둘째는 ‘교류 정상화’는 미수교국이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 쓰는 용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하고 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통일 지향이 명시돼 있다. 자칫 남북이 별개 국가라는 북한 주장에 동의하게 되는 꼴이다. 또 ‘비핵화’가 최후에 언급되면서 비핵화 이전에 다른 조치들이 선행된다는 의미로 읽히는 점도 문제다. ‘완전한’이라는 말도 사라진 비핵화가 주변화되면서 어쩌면 북한이 주장하는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를 비대칭적으로 감내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가 안전과 선의가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는 일방적인 실용성 강조로 해결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전략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