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한다더니 정치적
공세로 변질돼… 내년 6월
지방선거용 땔감 필요한가
공세로 변질돼… 내년 6월
지방선거용 땔감 필요한가
지난 25일 대법원 청사에선 신임 법관 153명에 대한 임명식이 열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제 법복을 입게 될 이들에게 “재판의 독립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깊이 되새겨 의연하고 굳건한 자세로 재판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연한 말이라 기삿거리가 되기 힘들었을 이 축사는 각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 최근 그를 향한 여권 공세에 대응하는 맥락으로 해석됐다. 판사로서의 새출발을 다짐했을 신임 법관들과 축하하러 온 가족들은 이튿날 조간 기사 제목을 보고 씁쓸했을 것이다.
‘사법부 독립’ ‘삼권분립’ 같은 당연한 말들이 기사가 되는 때는 그런 말을 찾아야 할 만큼 현실이 기형적일 때다. 이번엔 여당과 사법부의 대립이 배경이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으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개혁의 진행 방향은 조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재판을 맡고 있는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공세로 변질돼 버렸다. 실체도 불분명한 ‘조희대-한덕수 비밀 회동설’을 근거로 대법원장 청문회를 의결하더니, 정청래 대표 입에선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청문회를 두고 ‘삼권분립 사망’ 운운하는 것은 역사의 코미디” 같은 말까지 나왔다. 이러니 언론은 조 대법원장의 원론적 발언도 맥락을 따질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법관을 향한 민주당의 공세를 요약하면 이렇다. 대법원은 왜 지난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사건을 그렇게 서둘러 선고했나, 또 한편으로 내란 재판은 왜 이렇게 더디냐는 것이다. 한쪽은 빨라서 문제고 한쪽은 늦어서 문제라는 것인데, 이렇게 말이 일관되지 않을 때는 필시 가려진 말이 있는 법이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죄여야 할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에 유죄 취지 대법원 판단이 내려진 것이 못마땅하고, 당연히 유죄여야 할 윤 전 대통령을 구속 취소한 지 부장판사의 속내를 의심하는 것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법원을 공격하는 것이야 여의도 정치권의 익숙한 습성이긴 하나 이번처럼 밑도 끝도 없었던 적은 드물어 당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 모양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사법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근거 없는 의혹에 대한 진위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 사법개혁의 동력이 유튜버에서 흘러나온 ‘썰’을 확인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당장 착수해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고심 개편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게다가 카운터파트가 돼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가 소모적인 이슈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사법체계 근간을 다시 설계해야 할 건설적 논의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이 이를 추진하던 때부터 위헌성이 짙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특정 사건을 특정 재판부가 전담토록 하겠다는 발상은 사건 무작위 배정에 기반을 둔 재판 독립·공정성을 근간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윤 전 대통령 측에게는 또 하나의 시빗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재판이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내란 관련 재판 결과들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지 부장판사가 오는 12월 심리를 종결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니 민주당이 그동안 줄기차게 외쳐댔던 사법개혁과 ‘내란 종식’ 구호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침대 축구는 누가 하고 있나. 그 편리한 음모론을 한번 빌려다 쓰자면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때까지 개혁·내란 땔감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사법부 공격 최일선에 선 강경파 다수가 선거 출마 대상자로 거론되는 현실은 그저 우연일 뿐인가.
정현수 사회부 차장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