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침대 축구’는 누가 하고 있나

입력 2025-09-29 00:38

사법개혁 한다더니 정치적
공세로 변질돼… 내년 6월
지방선거용 땔감 필요한가

지난 25일 대법원 청사에선 신임 법관 153명에 대한 임명식이 열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제 법복을 입게 될 이들에게 “재판의 독립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깊이 되새겨 의연하고 굳건한 자세로 재판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연한 말이라 기삿거리가 되기 힘들었을 이 축사는 각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 최근 그를 향한 여권 공세에 대응하는 맥락으로 해석됐다. 판사로서의 새출발을 다짐했을 신임 법관들과 축하하러 온 가족들은 이튿날 조간 기사 제목을 보고 씁쓸했을 것이다.

‘사법부 독립’ ‘삼권분립’ 같은 당연한 말들이 기사가 되는 때는 그런 말을 찾아야 할 만큼 현실이 기형적일 때다. 이번엔 여당과 사법부의 대립이 배경이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으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개혁의 진행 방향은 조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재판을 맡고 있는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한 공세로 변질돼 버렸다. 실체도 불분명한 ‘조희대-한덕수 비밀 회동설’을 근거로 대법원장 청문회를 의결하더니, 정청래 대표 입에선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청문회를 두고 ‘삼권분립 사망’ 운운하는 것은 역사의 코미디” 같은 말까지 나왔다. 이러니 언론은 조 대법원장의 원론적 발언도 맥락을 따질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법관을 향한 민주당의 공세를 요약하면 이렇다. 대법원은 왜 지난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사건을 그렇게 서둘러 선고했나, 또 한편으로 내란 재판은 왜 이렇게 더디냐는 것이다. 한쪽은 빨라서 문제고 한쪽은 늦어서 문제라는 것인데, 이렇게 말이 일관되지 않을 때는 필시 가려진 말이 있는 법이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죄여야 할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에 유죄 취지 대법원 판단이 내려진 것이 못마땅하고, 당연히 유죄여야 할 윤 전 대통령을 구속 취소한 지 부장판사의 속내를 의심하는 것이다. 결론을 정해놓고 법원을 공격하는 것이야 여의도 정치권의 익숙한 습성이긴 하나 이번처럼 밑도 끝도 없었던 적은 드물어 당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 모양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사법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근거 없는 의혹에 대한 진위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 사법개혁의 동력이 유튜버에서 흘러나온 ‘썰’을 확인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당장 착수해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고심 개편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게다가 카운터파트가 돼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가 소모적인 이슈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사법체계 근간을 다시 설계해야 할 건설적 논의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이 이를 추진하던 때부터 위헌성이 짙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특정 사건을 특정 재판부가 전담토록 하겠다는 발상은 사건 무작위 배정에 기반을 둔 재판 독립·공정성을 근간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윤 전 대통령 측에게는 또 하나의 시빗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재판이 중단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내란 관련 재판 결과들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지 부장판사가 오는 12월 심리를 종결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니 민주당이 그동안 줄기차게 외쳐댔던 사법개혁과 ‘내란 종식’ 구호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침대 축구는 누가 하고 있나. 그 편리한 음모론을 한번 빌려다 쓰자면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때까지 개혁·내란 땔감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사법부 공격 최일선에 선 강경파 다수가 선거 출마 대상자로 거론되는 현실은 그저 우연일 뿐인가.

정현수 사회부 차장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