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1) 어린 시절 힘겨웠던 삶이 지금의 나를 세운 밑바탕

입력 2025-09-29 03:05
심재덕 선수가 지난 11일 경남 거제 아주천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나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골에서 태어났다. 화전민이 일군 산골 마을이었다. 조령산에서 이화령 고개를 넘어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어린 시절 내 놀이터였다. 버스가 다니지 않던 마을이어서 학교에 다녀오려면 매일 25리(약 9.7㎞)를 걸어야 했다. 해가 지고 진촌 마을 불빛이 사라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공포였다. 상여와 장례 도구가 놓인 어느 집 앞을 지날 땐 창문 너머 울긋불긋한 물건들을 보며 죽음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저수지가 있었다. 사람이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고, 어릴 적 부풀어 오른 시신을 빼내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봄이 되면 얼음이 갈라지며 터지는 굉음이 골짜기를 울렸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그 길을 홀로 걸어 집에 닿던 그 경험은 지금 내가 ‘울트라 트레일 러닝(자연 속 비포장 코스를 42.195㎞ 이상 달리는 초장거리 레이스)’을 완주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우리 집은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먹을거리를 산과 밭에서 구했다. 봄에는 두릅과 취나물, 여름에는 텃밭 채소와 산 열매, 가을이면 밤과 도토리, 겨울에는 칡뿌리 즙이 식탁에 올랐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골 밥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몸을 단련하는 훈련장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가난이야말로 내 지구력을 길러준 스승이었다.

늘 왜소했지만 산골 아이라 힘을 써야 했다. 여름이면 쇠꼴을 베어 나르고, 겨울이면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땔감을 날랐다. 산에 올라가 톱으로 나무를 베고 통나무를 굴려 신작로까지 내려보냈다. 내 몸보다 무거운 통나무 장작을 어깨에 메고 비탈길을 내려오면 어깨와 허벅지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냇가에서 쇠망치로 물고기를 잡을 때는 팔이 저릴 정도로 휘둘러야 했다. 그렇게 몸은 조금씩 단단해졌다.

울트라 트레일 러닝을 하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어린 시절 장작을 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무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던 순간과 결승선을 향해 버티는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 그때의 땀과 고통이 오늘의 긴 레이스를 견디는 근육과 심장이 됐다.

지금도 종종 혼자 산길을 달린다. 어두운 밤, 작은 빛 하나에 의지해 뛰어도 두렵지 않다. 큰 대회를 앞두고 야간 산악 훈련을 하면서 멧돼지나 뱀을 만나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산을 달리든 고향 산골을 달리는 듯 익숙하다.

힘들고 부족했던 시절은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고단한 삶의 흔적이 달리기의 밑바탕이 되어 오늘의 나를 세웠다. 예수를 믿고서야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였다는 것을.

<약력> △1969년 충북 괴산 출생 △1987년 대우조선(현 한화오션) 입사 △2008년 Sub-3(마라톤 풀코스 3시간 완주) 한국 최초 100회, 현재 330회 달성 △일본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100㎞), 미국 MMT 100마일(약 160㎞) 등 다수의 국제 대회 우승 △세계 정상급 울트라 트레일 러너 △ 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소속 △거제 염광교회 집사

거제=정리·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