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펀드 운용방식을 두고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미 관세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의 ‘선불’을 강조했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투자 규모의 증액을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반면 통상 당국은 한국의 재정·외환 부담을 우려하며 ‘통화스와프 선결’을 내세우고 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가 협상의 최대 분수령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6일 미 정부가 우리 측에 일본 수준으로 투자를 더욱 늘릴 것을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증액 요구를 받은 사실은 전혀 없다”며 “양국 간 이견이 노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적용하던 상호 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대미 투자금을 단순 현금 송금이 아닌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운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처를 결정할 때도 한국정부가 단순 자금 제공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투자 리스크 판단과 선정과정에서 일정 부분 개입할 권한을 가져야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수적이라는 게 우리 정부 판단이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3억 달러 수준이다. 외환시장에서 조달 가능한 달러는 연간 200억~300억 달러에 그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일본과 합의한 모델을 우리 측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성으로 투자를 받고, 투자처는 미국이 결정하며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이미 일본과 합의해 일본이 큰 폭으로 양보한 만큼 한국에 다른 조건을 적용할 경우 일본의 반발을 살 수 있어 동일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 달 말로 예정된 APEC 정상회의 전까지가 사실상 협상의 ‘최종 데드라인’으로 부각되면서 통상 당국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장 원장은 “한국은 실리를, 미국은 명분을 챙기는 방식으로 합의가 모색될 수 있으며,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합의문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 대통령 초청으로 3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1박2일간 한국을 방문한다. 두 정상은 부산에서 정상회담과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은 지난달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답방 차원이다.
세종=김혜지 기자, 이동환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