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에서 챔피언으로… 박성국 “더 오래 팬들 앞에 서고 싶다”

입력 2025-09-27 00:12
지난 21일 막을 내린 KPGA투어 골프존 오픈에서 우승한 박성국이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마친 뒤 우승 세리모니를 하고 있다. KPGA 제공

시련과 좌절을 겪지 않은 프로 골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투어 활동을 일찍 접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의 대표적 ‘언더독’ 박성국(37·엘앤씨바이오)은 후자의 사례를 상징하는 선수다. 그는 지난 21일 경북 구미시 골프존카운티 선산CC에서 끝난 KPGA투어 골프존 오픈에 ‘리랭킹’으로 출전, 덜컥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KPGA투어 리랭킹은 2007년에 처음 도입됐다. KPGA투어 카테고리 20번(전년도 KPGA 챌린지투어 통합순위 2위~10위)부터 23번(QT 본선 진출자)을 대상으로 상반기 제네시스 포인트 순위에 따라 하반기 시드 순위를 재조정하는 제도다.

풀 시드가 없더라도 어렵게 출전 기회를 잡아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DP월드투어도 도입하고 있다.

박성국은 골프존 오픈에서 우승하지 않았더라면 올 시즌 남은 6개 대회 중 2개 대회만 출전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7년 만에 승리한 덕에 남은 모든 대회 출전이 가능해졌다.

박성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손가락으로 통산 2승째를 나타내며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KPGA 제공

제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밝고 유쾌했던 그가 우승 직후 인터뷰 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건 혼자 삭여야만 했던 지난날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도중에 골프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골프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아내와 6살 난 딸을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했다. 고생한 가족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며 “좋아했던 것은 안 하고 힘들 게 꼭 해야 할 것들은 조금 더 많이 하려 했던 게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2007년 KPGA투어에 데뷔한 박성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시드를 잃었다. 통산 1승(2018년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드 유지 걱정은 하지 않았기에 충격파는 컸다. 마음을 다잡고 시드전을 통해 재입성을 노렸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그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솥밥 식구이자 친한 후배인 이대한(34·엘앤씨바이오)이 작년 투어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승을 거둔 것이다.

박성국은 “첫 우승 후에도 수차례 우승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며 “대한이가 ‘우승하겠다’는 마음으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뒤 기어이 우승하는 걸 보면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올 시즌 개막 후 2부인 챌린지 투어에 집중했다. 난생처음 접한 투어여서 낯설었지만 그래도 배수진을 치고 임하자 성적이 좋아지며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박성국은 “상반기에 나갈 수 있는 KPGA투어 대회가 아예 없었다”며 “많은 선수가 불참했던 KPGA 클래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예선전을 거쳐 출전했다”고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시기를 회상했다.

이제는 이른바 당당한 정규직으로 나머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호스트인 최경주(55·SK텔레콤)의 추천으로, KPGA경북오픈은 포인트 상위권 선수들의 대거 불참으로 출전 기회를 잡게 됐다. 골프존 오픈 우승으로 올 시즌 남은 대회 자동 출전권을 획득하면서 그가 사용하려했던 추천 티켓은 다른 선수에게 기회로 돌아갔다.

박성국은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투어 데뷔 11년 만에 거둔 생애 첫 우승이어서 개인적으로 각별한 대회다. 염치 불고하고 최 프로님께 추천을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최 이사장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승 직후 성국이가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는 진심을 담아 내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을 때 ‘정말 마음고생이 컸겠구나’ 생각이 들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정상을 차지한 성국이가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많은 선수가 그렇듯 박성국에게도 최경주는 롤모델이다. 금욕에 가까운 철저한 자기 절제로 기복 없이 꾸준하게 투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서다.

박성국은 “시드를 잃고 좋아하던 술을 안 마시고 러닝도 하면서 몸 관리를 했다.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아직 힘들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했더라면 골프존 오픈 마지막날 후반 9홀에서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얼떨떨했던 생애 첫 우승 때와 달리 두 번째 우승에서는 진짜 우승 맛을 만끽했다. 박성국은 “내년 시드 획득이 올해 목표였는데 이뤄냈다”며 “올 시즌 남은 대회도 출전하게 돼 정말 기쁘다. 남은 대회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