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정부가 금융정책·감독 기구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전격 철회했다. 이에 따라 해체 수순을 밟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체계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정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야당의 반발 등을 감안해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5일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당초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으로 처리하려 했던 금융위 정책·감독 기능 분리 및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신설 등을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 의장은 “정부조직 개편이 소모적 정쟁과 국론 분열의 소재가 돼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특히 경제위기 극복에 금융의 역할이 중요한데 금융감독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건 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당정의 금융 당국 개편안 철회에는 야당 반발이 주효했다. 기존 정부조직법 개편안에는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재경부)와 예산기획처로 분리하고 금융 정책 기능을 재경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감독 기능은 신설 금융감독위원회가 맡고 소비자 보호는 금소원이 맡는다는 그림도 포함됐다. 이를 실현하려면 금융위설치법을 금감위설치법으로 고치는 등 국회 정무위원회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당의 일방적 개편 작업에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해당 기관 직원들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 금감원 직원들은 당정이 금융 당국 개편안을 발표한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해 시위를 벌였다. 피감 대상사가 모인 금융권에서도 ‘시어머니가 넷(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으로 늘어난다’ ‘옥상옥상옥의 기형적인 구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금융 당국 개편안이 빠지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기재부 분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기능 환경부 이관을 통한 기후에너지환경부 확대·개편, 방송통신위원회 폐지 등만 반영하게 됐다. 금융 정책 기능을 흡수하지 못한 채 조직만 분리되는 기재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신설될 재경부가 부총리 부처로서 경제사령탑 역할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하면 경제정책 총괄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김진욱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