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엔드(END·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 천명을 계기로 대통령실과 통일부가 남북 ‘두 국가론’을 두고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남북이 통일 전까진 ‘잠정적 특수관계’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사실상 별개 국가인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장관이 대북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총대를 멘 것인지, 선을 넘고 있는 건 아닌지 평가가 분분하다.
정 장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라며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국가로 인정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국가라는 것,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관계 속에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참석한 세미나에서 한 발언에 이어 이틀 연속 남북 ‘두 국가론’을 주장한 것이다.
반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위 실장이 말한 것처럼 대통령실은 두 국가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입장은 일관돼 있다”며 “정 장관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전날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 관계는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과 내각에서 대북 정책을 두고 엇박자가 표출되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향후 대북 정책을 펴나가는 데 있어 정부 내 이견이 계속 불거진다면 일관된 정책 추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대북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를 내놓는 과정에서 대미·대북 라인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위 실장이 외교·안보 정책 전반을 끌고 가던 상황에서 정 장관이 총대를 메고 대북 정책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란 것이다. 북한이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은 뒤 여권 내부에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선 두 국가라는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다만 정 장관은 위 실장과의 이견에 대해 ‘소모적 논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위 실장 언급은) 적대적 두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통일부와 국방부·외교부·국정원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며 “용광로에 의견을 녹여내 대통령이 제시한 교류 대화를 빨리 복원하는 것,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을 위해 한 팀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 “오늘 이 시간에도 북한의 우라늄 원심분리기가 4곳에서 돌고 있다”며 “(북한의)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 보유량을 2000㎏까지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재를 통해 북핵을 포기한다? 가능성 없다”고 단언하며 북·미 정상회담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대북 관계 개선이 핵심인 정 장관과 대미 안보 협상이 최우선인 위 실장 간 입장차는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다. 오히려 한쪽 입장으로 경도된다면 변화무쌍한 북·미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잃을 것이란 의미다.
이동환 송태화 윤예솔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