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감독과 ‘추노’ 작가가 그려낸 경강나루 민초들의 삶

입력 2025-09-26 01:08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조선시대 경강(오늘날 한강) 나루에는 왈패들이 세력을 떨쳤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 일꾼을 거느리며 상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는 무법천지나 다름 없었다. 여러 구실로 임금을 떼먹고 각종 명목의 세금을 붙여 돈 뜯어내기 일쑤였다.

사극에서 흔한 왕족이나 양반 이야기가 아닌, 하층민의 치열한 삶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디즈니+가 처음 선보이는 사극 시리즈 ‘탁류’(사진)가 26일부터 매주 순차 공개된다. 힘이 곧 법이라고 믿는 왈패들과 그들의 뒷배인 무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단 세력이 어지럽게 얽히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못지않은 영상미와 공간·미술·의상 등의 디테일에서 제작 스케일이 짐작된다. 탁 트인 경강과 왁자지껄한 인근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초반 장면부터 시선을 붙잡는다. 경북 상주에 1만㎡(약 3000평) 규모로 조성한 세트장은 과거 경광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탄탄한 연출과 극본이 작품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천만 흥행을 일궈낸 추창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연출한 건 처음이다. 추 감독은 “‘상것’이라 불린 하층민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며 “잡초 같은 인생을 사는 왈패를 통해 민초의 삶을 다룬 점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극본은 드라마 ‘추노’(KBS2·2010)와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등을 집필한 천성일 작가가 맡았다. 가수 강허달림의 곡 ‘독백’ 중 ‘절망에 지친 사람들이 더 이상 날 붙잡지 않게 해줘’라는 가사를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천 작가는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청춘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주연에는 신예들이 기용됐다. 그룹 SF9 출신 로운이 비밀을 감춘 왈패 장시율 역, 드라마 ‘더 글로리’ 등에 출연한 신예은이 상단의 당찬 고명딸 최은 역, 박서함이 정의로운 종사관 정천 역을 맡았다. 최귀화, 박지환, 전배수, 김동원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합류해 극에 안정감을 더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