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근 출시된 아이폰 17 시리즈를 매장에서 만져보고 든 생각이었다. 애플이 아이폰 역사상 가장 얇은 제품이라고 강조한 아이폰 에어는 멋진 디자인을 뽐냈지만 사양면에서 부족했다. 두께에 집중하느라 기능을 포기했다. 반대로 아이폰 17 프로는 성능은 압도적이지만 디자인은 애플답지 않다는 혹평을 받는다. 잡스라면 두 제품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췄을까. 두께와 성능을 저울질하는 대신 ‘단 하나의 걸작’을 내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잡스는 단순함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17년간 잡스와 함께 애플의 광고 및 마케팅을 진행했던 켄 시걸은 자신의 저서 ‘미친듯이 심플’에서 잡스에게 단순함은 ‘미적 감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이 시장에서 차별화하고 승리할 수 있던 이유가 단순함을 추구했던 경영 전략 덕분이라는 것이다. 잡스에게 단순함은 단순히 빼거나 줄이는 게 아니다. 본질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 가장 좋은 것만 남기는 것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하나의 결과물이 어정쩡한 여럿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잡스는 1997년 ‘구원투수’로 애플에 복귀하면서 20종이던 제품 라인업을 개인용·전문가용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 4개로 단순화했다. 하이라이트는 2007년 선보인 아이폰이었다. 잡스 시절 애플은 한 가지 아이폰만 선보였다. 그가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선보인 아이폰 4s까지 이 기조는 유지됐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하나의 아이폰에 대중은 열광했고, ‘애플 팬보이’들이 양산됐다. 하지만 팀 쿡이 잡스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폰 5에선 파생 모델인 아이폰 5c를 선보이더니 아이폰 7부터는 크기에 따라 라인업을 2개로 늘렸다. 아이폰 12부터는 총 4가지 라인업으로 확대됐다. 이 전략은 애플의 거대한 성장을 이끌었지만 애플의 혁신적인 이미지는 점점 희미해지게 했다. 사실 다품종 전략은 삼성전자의 장점이었다. 삼성전자는 시장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와 사양을 갖춘 제품을 쏟아내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한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열성팬을 만들 특별함은 부족했고, 프리미엄 시장은 애플이 독차지했다.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 스마트폰 업계에서 가장 큰 혁신은 오히려 삼성전자 쪽에서 나온 듯하다. 지난 7월 갤럭시 Z 폴드7을 공개하면서 “울트라를 펼치다”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폴드7은 접었을 때 8.9㎜로 갤럭시 S25 울트라(8.2㎜)와 거의 비슷한 두께다. 폴드7의 무게는 215g으로 S25 울트라(218g)보다 가볍다.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졌던 휴대성을 대폭 개선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폴더블 스마트폰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바(Bar) 형태가 아닌 새로운 폼팩터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올해 신제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한국갤럽이 올해 7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사용 중인 스마트폰을 다시 구매하겠다는 사용자는 갤럭시 92%, 아이폰 77%로 나타났다. 2022년 같은 조사에서는 각각 86%와 87%를 기록했다. 3년 사이 갤럭시는 6% 포인트 증가한 반면 아이폰은 10% 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갤럭시 충성 고객은 늘고 아이폰은 줄어드는 셈이다.
모바일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AI) 시대가 오고 있다. 머지않아 AI에 최적화한 새로운 폼팩터의 디바이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 잡스의 애플이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꿨듯, 누군가는 ‘AI 시대의 아이폰’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자리가 애플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길 바란다.
김준엽 디지털뉴스센터 콘텐츠랩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