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탄압으로 유대인의 시오니즘(유대인 국가 건설) 운동이 한창이던 1903년 세계 최강국 영국은 자국령인 아프리카 케냐의 마우 고지(1만3000㎢)를 유대인 정착촌으로 제시했다. 시오니즘 총회에서 참석자들이 격론 끝에 이를 거부했다. 성서에 나온 땅(팔레스타인)을 버릴 수 없다는 점, 맹수가 많은 환경 등이 이유였다. 역사엔 만약이 없지만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현재의 중동 분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1차대전 발발 후 영국은 독일의 동맹인 오스만투르크에 맞서려고 이 지역과 연관된 아랍·유대인 측과 동시에 별개의 약속을 했다. 1915년에는 아랍을 독립시켜주겠다(후세인-맥마흔 협정), 1917년에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워주겠다(밸푸어선언)고 했다. 그 사이 1916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종전 후 아랍 지역을 분할하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은밀히 맺었다. 제국주의 시대 모략과 갈라치기의 진수였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 팔레스타인 및 아랍의 저항으로 중동이 화약고가 된 건 19세기 이후 유럽의 행태가 시발점이었다.
최근 열린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바람이 거세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이 앞장섰고 캐나다 호주 등이 합세했다. 이슬람권, 러시아·중국 정도 참여에 그친 예전과 양상이 판이하다. 193개 회원국 중 승인에 동참한 국가가 150개국을 넘었다. 2년간 지속된 가자 전쟁의 참상,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합병 우려 때문이다. 중동 사태에 원죄 의식이 있던 유럽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다만 키를 쥔 미국과 당사자 이스라엘의 반대가 심해 승인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면 중동 갈등을 멈춰야만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가장 약한 고리를 노렸다. 그래서인지 트럼프가 아랍 정상들에게 이스라엘의 서안 합병을 막겠다고 말했다. 노벨상 약발이 트럼프에게 통하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요즘처럼 많은 건 처음 아닐까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