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하면 빨갱이로
낙인 찍고 위협했던 때처럼
보수성향 유권자 모두를
극우로 매도하는 것 지나쳐
일상 침범한 낙인의 언어 대신
상대방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낙인 찍고 위협했던 때처럼
보수성향 유권자 모두를
극우로 매도하는 것 지나쳐
일상 침범한 낙인의 언어 대신
상대방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2017년이었다. 부산에서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곳을 따라 ‘구포 여중생 폭행 사건’이라고 언론은 불렀다. 한 독자가 신문사에 전화했다. “제가 구포 삽니다. 그 애들 구포 사람 아닙니다. 낙동강 너머 살아요. 강 건너와서 사고를 친 겁니다. 언론이 구포 여중생 사건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주민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선긋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같은 학군이고 옆동네인데, ‘그 문제 많은 아이들은 우리 동네 아니에요! 나랑 상관없어요!’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듯했다.
사람들은 세상사를 이리저리 선 긋고 나눠서 인식한다. 온갖 생물을 종속과목강문계로 나누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 드는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는 방편이다. 문제는 범주화가 호오와 선악을 구분하는 잣대로 쓰일 때다.
민주화운동 하면 “너도 빨갱이지?”라는 위협을 받던 때가 있었다. 집회에 참여하거나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 인간 자체를 반사회적인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는 폭력이었다. 물론 북한 정권에 충성을 맹세한다거나, 한국의 주요 시설 타격 정보를 만드는 식의 극단적 행동은 분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권을 비판하는 모든 이들을 빨갱이라는 범주에 묶어 버리면 대화와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막힌다. 상대를 척결하겠다는 폭력은 거기에 반발하는 투쟁만 부를 뿐이다.
요즘 극우라는 말을 들으면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연상된다. 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국 시민의 대략 20%, 세대별로는 30% 안팎까지 극우라고 한다. 극우라고 하면 해방 정국에서 정적을 암살했던 백색테러, 지난 겨울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범법자 같은 이미지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20~30%가 이런 이들이라면 과연 이 사회는 지속 가능할까. 오히려 극우라는 호칭이 남발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학계에서도 극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논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을 불신하고, 강력한 지도자와 급진적 사회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 의식을 극단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더해 그 지향이 반이민, 반공, 능력주의라면 극우라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지향이 확산되는 것은 다분히 우려스럽지만 극우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백색테러 같은 폭력적인 이미지와 차이가 크다. 자칫 극우라는 분류가 폭력적인 이들과 보수 성향 유권자를 싸잡아 낙인찍는 데 쓰일 수 있다. 적어도 선거에 참여하고 승복하는 이들을 부정선거론자들이나 폭력범들과 묶어선 안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보수 세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세워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봐도 그렇다. 기성 정치 담론에서 기득권자로 낙인찍히며 발언권도 얻지 못하고 사회적 혜택에서도 소외됐던 백인 노동자들이 참다 못해 분노한 역풍의 결과다. 선거로도 극복하지 못한 갈등 때문에 지금 미국은 다시 암살과 폭력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 겨울 국회 앞에 응원봉을 들고 모인 이들이 평범한 이웃이고 동료였듯이 태극기 집회에 나서는 이들도 대부분은 지극히 보통의 한국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점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치 지향이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포기하는 셈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선 수락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료입니다. 남녀로, 지역으로, 노소로 틈만 생기면 편을 갈라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고 대결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 (선거 기간) 잠시 다투었을지라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그분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다른 색깔의 옷을 잠시 입었을지라도 이제 우리는 모두 위대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똑같은 대한국민들입니다.”
대통령의 언어는 감동적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색이 다르다고 배격하거나 낙인찍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낙인의 언어가 이제는 일상으로 흘러와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폭력과 불법은 단호히 배격하고 처벌하되 자신의 범주를 넘어 다른 목소리까지 서로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낙동강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김지방 종교국 부국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