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입력 2025-09-26 00:32

글쓰기란 혼돈스런 사물을 연결하는 일…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이다

내 책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혼돈’이다. 읽고 싶은 책과 다 읽지 않은 책, 읽어야 할 책(결국 읽지 않은 책)이 층층이 쌓여 있다. 머그잔, 인덱스, 볼펜, 노트, 핸드크림, 손톱깎이, 머리빗, 물티슈. 없는 게 없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늘 여기에 없다.

정리정돈은 나의 취약점이다. 어릴 때부터 ‘늘어놓기’를 잘했다. 내 삶도 대체로 그렇다.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고 산다.

생각과 책상은 서로의 상태를 반영한다. 책상을 정리하면 생각도 조금 정돈된다. 물건을 치우기로 결심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질서를 정하는 것, 곧 기준을 세우고 대상을 나누는 것. 다시 말해 분류하기가 이뤄져야 한다. 책상에 있어야 할 것과 치워야 할 것, 사용 빈도가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처음에는 모든 게 명확히 나눠지는 것 같았지만 곧 헷갈리기 시작한다. 상황이나 변덕과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기준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 분류라는 게 가능한 일일까.

글쓰기에서 이 ‘분류’의 문제를 고민한 작가가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페렉이다. 그는 분류하기를 통해 글쓰기가 세계를 정리하는 시도임을 보여줬다. 작가의 일이 흩어진 생각, 감정, 사건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 일정한 형식으로 배치하며 질서를 만드는 것이라면, 페렉은 그 질서의 기준을 ‘사소한 것’에 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무가치하거나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예로 작업대의 물건, 장소, 특정 동사의 용례 같은 것들. 그 시도가 담긴 책이 바로 ‘생각하기/분류하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목에 쓰인 빗금(/)이다. 두 단어를 이어주면서 동시에 갈라놓는 기호. 덕분에 ‘생각하기’와 ‘분류하기’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지만 느슨한 연결이 가능한 사이가 됐다. 바로 여기서 페렉식 질서를 배울 수 있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것들을 나란히 늘어놓아 느슨한 연결을 만드는 일. 그렇다, 늘어놓기도 하나의 질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페렉식 정리를 시도해 보자. 머그잔/인덱스/영수증. 이 사물들은 기능도 의미도 제각각이지만 나란히 놓으면 일상의 풍경이 된다. 이런 식의 분류는 커다란 서사의 질서가 아니라 작은 사물들과 기억이 모여 이루는 세계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글쓰기의 질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한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길의 모퉁이에서. 마치 퍼즐을 맞추는 사람이 모서리부터 채워 나가는 것처럼.

물론 이 느슨하게 연결된 사물들이 단순한 풍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여기에서 시작되는 서사가 있다. 무엇이 중요하고 사소한지, 무엇이 크고 작은지, 이곳에 적힐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은 무엇인지 분류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서사에 이르게 된다. 내가 하찮게 여긴 것이 얼마나 나와 닮았는지, 내가 중시하는 것이 얼마나 내게 멀리 있는지.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전부이고, 그것들은 내 책상 위에 놓인 사물들처럼 작고 무질서하며, 뚜렷한 의미를 갖기 어렵다. 어쩌면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이 나열된 것들을 분류하고 또 실패하며, 그것의 질서를 알아가기 위해서.

삶은 쉽게 분류할 수 없는 것들이 혼란스럽게 놓인 책상을 닮았고, 나는 지금 그것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알맞은 자리를 찾는 중이다. 퍼즐 맞추기와 닮지 않았는가. 퍼즐의 목표는 완성이지만 완성이 곧 목적은 아니다. 다 맞춘 퍼즐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늘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리지만 진짜 의미는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데 있다. 완전한 분류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럼에도 나만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시도해 보는 것. 이분법적인 결말을 요구하는 세계에서 과감히 빗금을 그려보는 것. 정말이지 그게 전부다.

신유진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