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년 전이다. 2014년 12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해 여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50일 전쟁’을 치렀다.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 한국교회 차원에서 성금을 전달했다. 성금 전달 주체는 당시 한국교회봉사단이 국제구호단체로 설립한 ㈔월드디아코니아(WD)였다. WD 소속 목회자 2명과 가자지구 내 라이트하우스초등학교와 컬처앤라이트 도서관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했다. 전쟁으로 희망을 잃은 가자지구 어린이를 위한 교육 지원금이었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자지구에 들어가 후원금을 전달한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금 전달은 가자지구를 돕는 국제지원단체 ‘크리스천미션투가자(Christian Mission to Gaza)’ 대표인 한나 마사드 목사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마사드 목사는 가자지구 유일의 개신교회인 가자침례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의 핍박으로 요르단에 피신, 간접 선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성금 전달을 위한 가자지구 방문은 쉽지 않았다. 텔아비브 공항 입국 절차를 밟으며 2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고, 검문소의 복잡한 절차와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가자지구로 향했다. 가자지구 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측 2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해 만난 이는 가자침례교회 담임 한나 마헤르 목사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다. 콥트교회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그의 손목엔 콥트 신자의 상징인 검은 십자가 문양이 짙게 새겨져 있었다.
당시 가자지구 인구는 180만명에 달했다. 그중 기독교인은 1300명이라고 마헤르 목사가 힘줘 말했다. 우리 일행은 놀랐다. 가자지구에 기독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후 마헤르 목사가 소개한 가자지구 교회의 역사는 더욱 놀라웠다. 402년 그리스정교회 성당이 세워진 이래 동방정교회와 성공회, 로마가톨릭, 그리고 가자침례교회 등 종파별로 교회가 존재한다고 했다.
1954년 설립된 가자침례교회는 1970년대 후반까지 크게 성장했다. 1987년 1차 인티파다 시절엔 상처 입은 무슬림 이웃을 정성껏 돌봤다고 한다. 교회는 어려운 중에도 라이트하우스초등학교, 도서관 등과도 협력하면서 섬김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WD가 성금을 전달했던 라이트하우스초등학교는 2004년 미국 오순절 교단인 하나님의성회 소속 존 카르톡 선교사가 세운 사립학교라 했다. 교사 80%가 크리스천으로 구성된 미션스쿨이었다.
이스라엘은 지난 23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각국이 팔레스타인 해법을 촉구하는 중에도 가자지구 장악을 위한 지상전을 이어갔다. 파괴된 가자시티와 피란민 행렬을 TV로 보면서 11년 전 만났던 기독교인과 아이들 생각이 났다. 그들은 어떻게 지낼까. 과연 살아 있을까. 가자지구 기독교인들은 2중으로 고통을 받았다.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에 끼여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려고 했다.
가자지구 기독교인들이 떠나지 못한 이유는 그곳이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은 가족과 신앙 공동체가 있는 땅이었다. 가자는 ‘성경의 땅’이기도 하다. 우리말 성경엔 ‘가사’로 번역된 고대 도시이다. 사사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의 무대가 됐던 장소이며 구약성경 곳곳에 언급된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는 집사 빌립이 가사에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미국의 일부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작전을 구약성경의 ‘가나안 정복’에 빗대 동조하고 있다. 마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멸절돼야 할 가나안 족속인 것처럼 살육을 정당화한다. 이는 성경을 완전히 왜곡한 데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위배된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이스라엘이 아니다. 마헤르 목사의 말이 아직도 귀에 울린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소망한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